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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현 Dec 08. 2023

젊어뵈네. 자네 몇 살이야?


''젊어뵈네. 자네 몇 살이야?''


대리운전을 할 때 고객으로부터 반말을 듣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너무 취했거나 내가 어려보이거나. 나는 당당히 후자라고 믿고 대답했다. 


''어립니다. 많이. 몆살처럼 보이셔요. 제가?''


껄껄껄 웃는 고객은 어림잡아 50대 중반같았다. 


''어두우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20대?''


''고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 조금 더 됐습니다. 30대입니다.''


''아이고. 어두워서 그랬네. 나이가 많구만... 응? 한참 일할 나인데 왜 이런 일 하는거야?'' 


대리운전을 하며 고객과의 대화는 자중하는 편이지만 이왕 시작한거의 대리기사가 아닌 인간 신정현으로 완벽히 빙의해서 대답하기로 했다.


''저는 활동가예요. 낮엔 활동하고 저녁엔 생활비 벌어요.''


''무슨 일을 해?'', ''아, 청년운동입니다. 평화통일운동도 해요.''


고객님의 다음 대답을 예상할 수 있을 법한 한숨이 들렸다.


''무슨 그런 쓰잘데 없는 일을 해.. 내 말 잘 들어봐. 지금이라도 기술학교 들어가서 기술 배워. 웬만한 직장에 취직은 될거야.''


나는 아주 크게 웃으면 말했다.


''하하하! 고객님, 저는 기계 만지는 거 싫어요. 열심히 활동해서 힘든 청년들 살기 좋게 하고 우리나라 평화통일도 이룰 거예요. 제 꿈이 통일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하하하!''


''젊은 사람이... 그냥 일하기 싫다는 얘기지 뭐. 돈을 벌어.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사람구실하지!''


''고객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활동을 하는 거예요. 이게 재밌으니 대리운전을 해도 즐겁고요. 오늘 벌면 내일 활동을 맘껏 할 수 있어요. 저 되게 신나보이지 않으세요?''


''그러게 말이야. 무슨 웃음소리가 그렇게 커. 기운이 넘치네. 그래도 말이야.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부모님은 어떻게 모실거야?''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그리곤 차분히 대답했다.


''공부도 하고 있어요. 대학원 마치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강의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배운 걸로 가르치며 돈버는 거 진짜 멋진 거 같아요. 유명강사되면 돈 좀 많이 벌겠죠 뭐...''


고객님은 흐느적거리듯 껄껄거리며 웃음을 이어갔다.


''무슨 꿈같은 소리하냐. 강의가 쉽냐. 그냥 기술 배워 기술. 자격증이라도 따놔. 그걸 다른 사람한테 빌려주면 돈도 받고 그러잖아. 돈 벌 생각이나 해.''


''고객님. 자격증 빌려주고 돈 받는거 불법이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돈벌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적게 벌어도 되니 저 하고 싶은거 할래요. 그거 하면서 적게 쓰는 법을 배우면 되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부자는 못되어도 굶어죽지 않는 세상이 정상이잖아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이런 소리하면 따귀라도 때릴텐데... 그려 그렇게 살아. 젊은 사람이 참... 불법은 무슨. 그렇게 바르게 산다고 세상이 바뀌나? 내가 살아야지. 답답하네 이 친구... 정치같은 거나 하면 잘하겠네.''


나는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고객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다다르자 많이 아쉬웠는지 한번 더 시비를 건다. 


''이거 해서 얼마나 받는다고... 얼마나 벌어?''


''고객님이 팁을 주시면 오늘 저는 일 쉬고 집에 가려고요.''


''아이고 내가 현금이 없어. 카드로 팁을 줄 수도 없고... 잘 가.''


나는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으면서 90도로 인사를 건냈다.


''하하하하하!  고객님, 덕분에 오늘 더 열심히 일하겠네요! 고맙습니다!''


눈길은 꽤나 미끄러웠고 콜은 더이상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왜 그런지 설명되지 않지만, 한참동안 흥얼거리며 눈길을 헤치며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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