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고양, 파주를 오가는 대리운전기사에겐 가장 고마운 버스지요.
새벽 3시, 706번 버스를 탔습니다. 아직도 운행 중인 버스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시간까지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버스에 가득한 승객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한손에는 휴대폰을 꺼내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 분들은 바로 고객의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님들입니다. 모두가 나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들임에도 서로를 향한 안부의 눈길 대신 언제 콜이 뜰지 모르는 휴대폰에만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엄연히 노동의 시간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버스를 가득 채운 우리 대리기사들은 늦은 시간까지 온몸을 내던져 일하고 일한 만큼 정직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노동자입니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고객을 찾아가고 안전운전을 하는 과정에는 어떤 부당한 편법이나 부조리한 권력개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조금 더 노련하고 손이 빠른 이들이 조금 더 일을 하는 정도이지요.
이따금 모시는 손님 중에 저를 '사연이 많은 불우한 청년'으로 안타깝게 바라봐 주는 고객들이 계십니다. 그 시선이 불편한게 사실입니다. 이 일을 어쩌다가 했는가보다 이 일로 무얼 하기 원하는지는 묻는 분은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대리기사와 옆자리에 앉아갈 때 어떤 이유로 이 일을 시작하셨는 묻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습니다.
누군가는 밀린 월세를, 누군가는 자녀의 학원비를, 누군가는 다음 학기 학비를, 누군가는 내일 먹을 끼니를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 중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한 분 한 분이 꿈을 갖고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 꿈이 어린 시절 근사하고 화려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또한 소중한 꿈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이 고요한 버스공간에서 제가 보는 건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의 가슴에 품은 작고 소소한 꿈이 실현되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길 소망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밤 꿈꾸는 이들과 함께 꿈의 버스를 타고 가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