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부산, 경주, 진주, 원주...
전국 지방의회 의원연수에서 강의시간의 상당량을 의정활동 보고서, 의정보고회, 주민과의 공개적인 성과 공유가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그것은 단순 홍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의원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유권자가 당신을 다시 선택해야 할 명분이 된다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끝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의원들도 있다. 쉬는 시간에 이유를 물으면 답은 늘 단순하다.
"우리야 의정성과를 알리고 싶어도 공천 주는 양반들 눈밖에 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너무 열심히 하면, 너무 튀면, 다음 공천이 어렵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열심히 일한 성과를 주민 앞에 내놓는 일이, 왜 지역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되었을까. 지방자치라 부르지만, 현실의 지방정치는 국회의원과 지역(당협)위원장에게 종속된 구조다.
시민보다 공천권자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게 만드는 이 오래된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선거 때마다 ‘시민을 보고 정치하겠다’고 외쳤던 다짐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가 공천이 되어버리는 정치, 이것이 지방의원을 깊은 딜레마로 몰아넣고 있다.
이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오늘 강의장에서 고개를 떨구던 의원들의 고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결국 답은 제도에 있다. 중앙에 종속된 구조를 바꾸고, 지방의원들이 풀뿌리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이 선거제 개혁이다. 획일화된 2인 선거구제는 최소한 3인, 4인, 5인 선거구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과 지역위원장의 눈치를 덜 보고, 주민을 향해 정치할 수 있다.
광역의회 역시 마찬가지다. 1인 선거구제를 고수하는 한 공천의 힘은 더욱 커질 뿐이다.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그리고 충분한 비례대표 확대를 통해 민심이 의회 구성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풀뿌리 정치의 토대를 회복하는 길이다.
지금은 정치개혁을 추진하기에 결코 나쁜 시기가 아니다. 행정부와 집권 여당이 의지를 모은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합당이냐 아니냐, 친명이냐 친청이냐에 머물러 있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끝내고 거리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 과제는 뒤로 밀려 있다.
합당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당내 평가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시민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가 닮은 얼굴의 사람들이 지방의회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선거제 개혁이다. 오래 외면되어 왔지만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 과제다.
일산으로 돌아온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한 의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년에 다시 그분을 만날 때는, 주민을 먼저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치 환경 속에 서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다시 숨 쉬는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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