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허락받은 결혼 아니야?(2)

상견례 준비하기 ②

by 눅눅한과자


“어차피 할 상견롄데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는 편이 낫지 않아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집에 돌아와 부모님 앞에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원래 상견례라는 게 공식적으로 양가 인사하고 허락받는 자리인 걸로 알고 있다, 프러포즈도 일찍 했는데 상견례만 결혼 준비다 해놓고 늦게 하는 것도 조금 신경 쓰인다, 어차피 우린 상견례 장소도 고민할 필요 없지 않으냐(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늦게 해서 그렇지 일찍 하는 사람들은 결혼 준비 초반에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왕 여기까지 지른 거, 속사포처럼 준비한 말을 마저 쏟아냈다. 혹시나 부모님께서 기분 나빠할까 봐 여자친구의 요구사항을 마치 내 의견인양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말이 제대로 먹혀들었을 리가 없다. 일단 부모님 생각에 상견례는 전혀 급한 일이 아니었고, 매사에 느긋한 성격에 자기주장이 결코 적극적이지 않은 아들이 갑자기 열성적으로 당신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이 의아해 보였을 터였다. 결국 눈치 빠른 부모님께선(물론 내가 연기를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른 상견례에 대한 의견이 내가 아닌 여자친구와 예비 사돈댁의 아이디어임을 알아냈고, 오히려 나에게 그들을 잘 설득하라고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중간에서 난처해진 건 나였다. 결혼식 당사자로서 단순히 양가(兩家)의 의견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만 해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양보를 받아내든 중재안을 도출해 내든 무엇인가 결론을 내야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도리어 양쪽 집안에서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물어보며 해결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여자친구라도 내 편이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각자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여 조금씩 양보시키는, 나름 이상적인 그림을 상상하며. 하지만 오히려 여자친구가 더 단호했다. 더욱이 그녀는 우리 집에서 상견례를 미루려 하는 것이 아들 가진 집에서 갑(甲) 질을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안 그래도 TV 드라마와 각종 SNS에서 결혼을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일삼는 신랑 측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시절이다. 여자친구의 태도에 화도 나고 실망도 했지만, 마냥 그녀를 비난만 할 수도 없었다. 결혼식 날짜도, 결혼식장도, 사실 우리 부모님의 뜻에 맞춰 여자친구가 양보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커플이 양가에 각각 인사차 방문한 직후쯤이었나, 어머니들 사이에 묘한 갈등이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어머니께서 여자친구 어머니께 전화하는 과정에서 다소 편하게 대한 것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보다. 표면상 금방 화해(?) 했지만 상견례 갈등이 절정에 이를 때쯤 이 사건까지 예비 시댁의 갑질로 회자되며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그 뒤로... 정확히 어떻게 상견례 날짜가 정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어쩌면 과도한 스트레스의 결과로 내 머리의 자기 방어 기제가 작용,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때의 답답했던 심정과, 친한 친구들에게 틈틈이 자문을 구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결과적으로 몇 번의 의견수렴과 전달, 서운함, 말다툼이 반복된 끝에 여자친구 집에서 주장하던 여름과 우리 부모님께서 주장하던 겨울이란 시간이 절충되어 마침내 10월의 어느 날로 상견례 날짜가 잡혔다.

그렇게 일단 한숨은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 해결되더라도 마음의 앙금은 남는 법이다. 여자친구는 결혼 날짜, 결혼식장에 이어 상견례 날짜까지, 야구로 따지면 삼진 아웃당한 타자처럼 며칠간 때로는 허망하고 때로는 분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게 있었다. 야구는 쓰리아웃까지 있다는 걸.



갈등이 심화될수록, 회사에서도 일하다 말고 조용한 곳을 찾아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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