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도 젊어. 저 땐... 어렸지. 그리고 나 나름 살도 뺐었다? 티는 안 났겠지만."
나이 먹는다는 사실이 서러웠을까.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약간 울컥한 것 같았다.
"역시 스튜디오 사진 찍길 잘했지? 요새 촬영은 생략하거나 간단하게 스냅사진으로 대체하 하는 커플이 많대서. 우리도 할지 말지 잠깐 고민했잖아.”
벌써 몇 번이나 봤던 앨범을 넘기며 내가 대답했다.
“응, 남들이 찍어놓고 한 번도 안 본다고 하도 말이 많아서... 우린 이렇게 자주 보는데”
“이 사진 기억나? 이거 네가 앨범에서 빼려고 했잖아. 과하게 예쁜 척한 것 같았다나. 그리고 이 사진은...”
늘 그렇듯, 앨범을 한번 펼치는 순간 시간이 삭제되는 마법이 시작되고 있었다.
8월에 ‘스드메’ 계약을 하며 스튜디오 촬영일을 11월 말로 미리 예약했었다. 딱히 의미 있는 날짜는 아니었다. 일단 촬영 때 입을 옷이 완성되기까지 넉넉하게 두 달은 필요했고, 10월은 날씨가 좋아서 이미 촬영 예약이 이미 완료됐단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가 11월이었을 뿐이다. ‘투어’를 마치고 난 뒤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마침내 한복과 예복 정장 완성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10월 중 주말 하루를 잡아 촬영용으로 대여할 신부 드레스를 골랐다(드레스투어 후기는 나중에 따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촬영 약 2주 전부터 나름 외모 관리를 했다. 적극적으로 살을 빼거나 피부관리를 받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컨디션을 좋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툭하면 귀찮아서 빠지던 새벽 운동을 꾸준히 했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조언에 따라 로션도 꼼꼼히 발랐다. 만약 얼굴에 뾰루지라도 하나 나면 엄청나게 혼날 것을 알기 때문에.
촬영 이틀 전쯤 최종 점검을 했다. 내 양복 한 벌과 각자 입을 한복이 각 한 벌씩, 그리고 여자친구가 입을 대여 웨딩드레스 두 벌, 그리고 촬영을 도와줄 헬퍼의 수고비 명목의 현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헬퍼는 통상 중년의 여성분으로 촬영할 때 커플의 옷 매무사를 다듬어 주거나 신부가 드레스 입는 걸 도와주는 일(웨딩드레스는 절대 혼자 입을 수 없다)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신랑신부가 직접 섭외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웨딩플래너에게 추천을 맡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식거리를 챙겼다. 촬영이 장장 5~6시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이때 처음 촬영 소요 시간을 처음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물론이고 사진작가와 헬퍼분 또한 요기할 시간이 없어 신랑 신부가 간식을 넉넉히 챙기는 게 관례란다.
촬영 당일, 촬영은 분명 오전 11시랬는데 메이크업 샵 예약은 8시였다. 이동시간 고려해도 적어도 메이크업이 2시간은 걸린다는 얘긴데... 그 시간 내내 뭘 할지 상상이 가지는 않았지만 말로만 듣던 신부화장을 직접 목격할 기회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메이크업 샵은 내 상상보다 훨씬 거대했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듯했는데, 1층은 머리를 다듬는 공간인 듯 거울과 의자 한 쌍으로 이루어진 자리가 10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자, 소파가 갖춰진 대기실을 방 몇 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작은 탈의실 외엔 대개 메이크업을 위한 공간들이었다. 문에 닫혀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이미(오전 8시인데!) 몇 커플이 화장을 받고 있는 듯했다. 10~20분쯤 기다렸을까. 여자친구와 함께 불려 가 의자에 앉았다(결혼준비를 하다 보면 내 이름이 불릴 일은 거의 없다. ‘000 신부님의 신랑님’이 내 공식 호칭이 된다).
거울 앞엔 100개는 되어 보이는 듯한 화장품이 칸을 분리하여 놓여있었다. 저걸 다 쓸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여자친구와 내 뒤에 미용사가 각 한 명씩 붙어 여러 가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눈을 치켜떠라, 고개를 들어라, 입을 벌려라 등등...
‘이래서 여자들이 화장할 때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15~20분쯤 흘렀을까. 신랑분 메이크업은 끝났으니 이제 아래층에 머리를 하러 가란다.
고작 15분 동안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고 거울을 봤더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 코, 입 형태를 보니 분명 나는 맞는데 소위 ‘뽀샵’ 효과를 넣은 듯 피부가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아직 얼굴이 거의 그대로다. 그쪽은 얼마나 있다 끝나냐고 물었더니 그쪽 미용사 분이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 앞으로.. 두 시간 정도요?”
어? 내가 잘 못 들었나? 어쩐지 처음에 신랑분은 한두 시간 늦게 오셔도 된다고 안내하더라.
아침 일찍 일어나 벌써 하품이 나오건만, 우리의 길고 길었던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