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2)

스튜디오 촬영하기 ②

by 눅눅한과자


시시각각 변해가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것도 잠시, 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어느덧 그녀도 메이크업이 끝나있었다. 말로만 듣던 신부화장을 지켜본 소감은 한마디로...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내가 알던 사람은 맞는데 인상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물론 긍정적인 면으로). 괜히 신부 메이크업이 신랑대비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샵을 나섰다.



그리고 청담동 골목길을 5분 남짓 운전해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직원이 우리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벽 곳곳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예비 신혼부부의 사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가족사진과 이제 막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기 사진들이 우리가 장소를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상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져온 옷이 몇 벌인 지 확인하고 그날의 촬영 콘셉트를 대강 설명했던 것 같다. 준비해 온 양복과 드레스를 각각 갈아입고 계단을 올라가니 좁아 보이던 건물에 이런 장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공간이 나타났고, 분위기에 적응할 새도 없이 카메라 셔터음이 울렸다. 사진관에 찍어본 사진이라야 증명사진, 여권사진이 전부인 나에게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는 전신사진 촬영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손을 벽에 기대라는 둥, 신부님 허리를 감싸라는 둥, 먼 곳을 응시하라는 둥 사진작가가 다양한 요구를 하는 와중에 ‘발 간격을 좁히라, 턱을 당겨라, 어깨 힘을 빼라’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교정하다 보니 내 몸은 마치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 마냥 관절이 제각각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에게 용기를 준 건 나보다 훨씬 더 어색해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이었다.


“신랑분, 표정 아주 좋아요. 계속 그렇게 포근하게 웃으시고. 아니, 신부님 왜 이렇게 얼었어요? 좀 웃어보세요, 신랑분만 행복한가 봐.”


타박인지 유머인지 구분하기 힘든 사진작가의 말에 그녀도 최대한 없는 ‘끼’를 쥐어짜 냈으나, 평소 남들 앞에 서기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한쪽 입꼬리만 어색하게 올라갈 뿐이었다. 그 모습에 뿌듯함인지 자신감인지, 왠지 모를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준비 시장에서 늘 천대(?) 받는 남자로서 내가 여자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다는 다소 유치한 감정이랄까.



그렇게 사진작가의 지시에 따라 온갖 포즈를 잡고, 자리를 옮겨가며 한참을 촬영했다. 남들 앞에서 손을 턱에 괴는 등의 소위 ‘x폼’을 잡는다든가, 여자친구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등의 애정행각(?)을 하는 것이 자못 낯간지러웠으나, ‘작품’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게다가 이게 얼마짜리 촬영인데. 그리고 사진 모델도 계속하다 보니 점점 자신감도 붙고 나름 재미도 느껴져서 한동안은 카메라 앞에서 의욕을 부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셔터 울림을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쯤이었는지, 촬영 장소를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하여 조화로 가득한 푸른 정원을 지나 앤티크 한 가구와 커튼으로 장식된 방으로 이동했을 때쯤이었는지, 아니면 옷을 갈아입다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준비해 온 초코바를 먹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는 점점 입가의 미소를 잃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4~5시간쯤 지났으려나. 분명 일 하는 사람은 내 앞의 사진작가인데 왜 우리가 지쳐가는 건지.

“자, 이제 야외촬영만 남았습니다. 신랑신부님 나가실게요.”


아침저녁으로 이미 영하권의 날씨가 계속되는 11월 말, 결혼식 날짜에 맞춘 봄가을용 양복만을 입고 있는 신랑과 팔이 훤히 드러나는 홑 겹의 웨딩드레스는 입은 신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튜디오 촬영은 결혼 준비 과정 중 내가 더 적극적이던 몇 안 되는 순간이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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