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눅눅한과자 Aug 29. 2023

저, 결혼합니다(4)

결혼식장 꾸미기 & 식순 정하기 ①



  결혼식장 예약할 때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호텔 연회 예약실. 8개월 만에 찾아왔음에도 어제 본 것 마냥 우리의 정보를 세세히 기억하는 직원들을 보며 그들의 직업정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방문은 결혼식 당일에 식장을 어떻게 꾸밀지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내를 받아 나와 여자친구, 그리고 어머니가 각각 상담실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같은 장소에서 큰 아들을 결혼시켜 본 경력자(?)로서 조언도 할 겸 작은아들 부부와 동행하고 싶어 따라오셨다고 했다. 다만 (예비) 시어머니까지 오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지, 베테랑인 직원들도 조금은 당황하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꽃 장식을 골라야 했다. 상담은 호텔 직원이 아닌, (아마도) 호텔 측과 연계가 되어있는 플로리스트와 직접 하는 것이었다. 일단 꽃 추가 여부를 정하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꽃장식은 예식장비에 포함되어 있지만, 조금 더 풍성한 느낌을 내기 위해선 추가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를 추가하냐에 따라서 하객석에 올라갈 꽃의 종류와 양이 바뀐다고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례가 설 단상(壇上)에 장식할 꽃도, 신랑신부가 입장할 버진로드(virgin road)를 수놓을 꽃도 다 옵션이 붙어있었다.      


  추가여부를 선택한 다음엔 구체적인 디자인을 정해야 했다. 테이블에 꽃을 길게 혹은 짧게 올려놓을지를 시작으로 색감은 어떻게 할지, 촛대 등 꽃 외의 장식은 얼마나 올려놓을지를 판단해야 했다. 물론 주로 플로리스트가 준 선택지 안에서 결정하는 것이긴 했지만, 꽃집에서 꽃을 살 때도 ‘적당히 알아서 예쁘게 해 주세요’가 유일한 주문 멘트인 내겐 버거운 일이었다. 다행히 나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쑥덕쑥덕 몇 마디 의견을 나누더니 (감사하게도) 금세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와의 상담이 끝나자 우리를 처음 상담실로 안내한 직원이 다시 입장했다. 그리고 또 몇 가지 선택사항을 주었다. 주로 음악에 관한 것이었는데, 먼저 식전(式前) 연주를 고를 수 있다고 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처음 계약할 때 기본 옵션인 피아노 3중주(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골랐던 모양인데, 추가 비용을 내면 성악(聖樂)으로 변경이 가능하단다. 여자친구의 순간 찌푸려진 표정을 나만 눈치챈 것일까. 어머니는 정말 멋있겠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상담 직원은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 적극적으로 영업을 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아뇨, 그냥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요. 너무 웅장한 건... 조금 부담스럽네요”     


 “왜, 멋지지 않아? 뭔가 성대하고 고급스러운 느낌?”     


 “맞아요, 신랑님. 전문성악가 분들이 꽉 차는 풍성한 느낌을 연출해 줄 거예요. 게다가...”     


 “아뇨, 아뇨. 괜찮아요. 저번에 다른 결혼식에 봤는데 뭔가 유난스러운 느낌이라. 꼭 개x콘서트에 나오는 ‘도레x 트리오’ 코너가 생각나더라고요.”  


  나의 완강한 저항(?)에 설득한 포기한 그들. 이번엔 결혼식 1부와 2부 사이에 재즈 공연을 넣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설명에 따르면 1부가 끝나면 사진촬영이나 식사 등으로 어수선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가수가 ‘짜잔’하고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의 산만한 분위기를 쉽게 무대 위로 집중시킬 수 있단다.      


  여자친구나 나나 일면식 없는 지인에게 결혼식의 일부를 맡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썩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 결혼식 때 하객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다는 어머니의 생생한 증언(?)과 상담직원의 ‘강력추천’에 힘입어 결국 공연을 추가하는 것에 동의하고 말았다(가격이 별로 과하지 않은 것도 큰 이유였다).          


  이어서 하객 좌석 배치를 정했다. 가족 및 친지석, 친구석, 직장 동료석 등 정확히 누가 올진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알겠지만 지인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얼추 하객 수를 계산하여 테이블 위치를 잡았다. 현장에서 바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은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결혼식순이 정리된 시트지와 식 시작 전 스크린에 띄울 신랑신부 사진, 그리고 축가 공연을 위한 마이크 배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불과 1,2주 사이에 이걸 다 해결해야 하다니, 이런 건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되나. 도대체 10개월이 동안 뭘 했길래 아직도 이렇게 할게 많은 걸까.'


 속으로 투덜거려 봤자 소용없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좋든 싫든 해낼 수밖에.


결혼식날 버진로드 전경. 심혈을 기울여 꽃을 고른 보람이 있었다. 


이전 14화 저, 결혼합니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