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 꾸미기 & 식순 정하기 ②
결혼식을 목전에 두자 오히려 여자친구와 만날 시간이 없었다. 각자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회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를 겪으며 따로 다이어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야위어 가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한가한 내가 퇴근 후(또는 회사 업무시간 중에) 필요한 준비를 했다.
먼저 필요한 사진을 골라야 했다. 결혼식장 문 밖에 위치한 포토 테이블에 올라갈 사진은 금방 고를 수 있었다. 스튜디오 촬영 결과물로 받은 스무 장 남짓한 사진 중 잘 나온 것 몇 장을 고르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 파일을 보내고 인화한 사진을 직접 찾아오는 과정이 귀찮긴 했지만, 그보단 모바일 청첩장 이후로 처음으로 스튜디오 사진을 (드디어!) 써먹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반대로 결혼식 전 예식홀 스크린에 띄울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은근히 까다로웠는데, 여자친구와 사소한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평소에 데이트하며 찍은 일상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내가 남의 결혼식을 다녀보니, 하객으로서 몇 안 되는 유희거리가 신랑 신부의 꾸밈없는 모습이 송출되는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친구는 여기에도 스튜디오 촬영 사진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기껏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 신부화장에, 웨딩드레스에 이 난리(?)를 치고 결혼준비를 하는 건데 자연스럽고 투박한 평소 모습을, 그것도 거대한 화면을 통해 내보내는 건 싫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조언인지 당신의 로망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랑신부의 어릴 적부터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을 차례대로 올렸으면 좋겠다 하신다. 화목한 가족사진은 자연히 따라붙는 거고.
결혼이 코앞인데 사소한 일에 쓸 시간도 신경도 없던 우리는 적당히 타협했다. 스튜디오 사진 위주로 넣되 일상 사진은 중간중간에 화면을 3,4 등분해서 최대한 작게, 인물 중심보다는 분위기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넣기로 말이다(당연히 성장사진따윈 고려하지도 않았다. 번거로운 데다 여자친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에). 이제 와서 전문 업체에 맡길 여유도 없기에 편집작업은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결혼식 식순(式順)은 별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해결했다. 애초에 딱히 남들과 다른 ‘튀는’ 결혼식을 할 생각도 없었기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식순에서 바꿀 부분이 거의 없었다. 결혼 사회자 멘트 등을 담은 시나리오는 형 결혼 때 쓰던 자료를 받아 최소한의 수정만을 거쳤다.
결혼식 사회는 내 절친한 친구로 진작 섭외 완료해 놓았다. 나름 결혼식 사회를 몇 번 맡아본 경력직(?) 인재여서 마음 든든했다. 주례는 선정에 있어 고민을 거듭했다. 친분과 사회적 지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데다, 워낙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보니 부탁 맡은 당사자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엔 주례 없는 결혼식이 워낙 흔하기도 하고, 처음 연락드린 몇 분이 역할을 고사하시는 바람에 생략도 고려했으나 다행히 아직 현역(現役)으로 활동 중이신 아버지 친구분께서 맡아 주시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축가(祝歌) 불러줄 사람을 정해야 했다. 노래 실력과 관계없이 친분만으로 축가 역할을 맡겼다가 소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된 결혼식을 몇몇 알기에 섭외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실력만 있다고 별다른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부탁하기엔 축가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던가. 나만큼이나 예술적 재능이 부족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럴 바엔 차라리 내가 직접 노래하는 게 낫겠다고 결심했다. 신랑이 부르는 노래는, 비록 실력이 출중하지 않더라도 그 용기와 의미만으로 용서가 되지 않을까란 일말의 기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같이 노래방에 갔던 지인들이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해준 덕에 용기를 낸 면도 있다).
프러포즈용 동영상에 삽입했던 노래를 선택한 뒤 결혼식 전 마지막 일주일을 노래연습으로 불태웠다. 벌써 20년 가까이 취미 삼아 밴드 활동을 할 정도로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형이 기타 반주와 코러스를 맡아 주기로 해서 마음이 든든했다. 결혼식장 음향장비나 동선도 형이 호텔 쪽 담당자와 알아서 다 조정해 준단다. 매일 퇴근 후 방에 틀어박혀 노래연습을 하는 사이 결혼식 준비 완료를 알리는 메일을 몇 통 받았다. 웨딩플래너는 결혼식 전 마지막으로 체크할 리스트를 보내주었고, 호텔에선 결혼식순과 시나리오가 맞는지 최종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일생일대의 이벤트가 다가와도 내 삶은 아직 변한 게 없었다. 아침이면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취미생활을 하거나 쉬었다(물론 막판엔 결혼 준비로 바쁘긴 했지만). 자기 전엔 전화나 메신저로 여자친구와 하루 일과를 공유했다. 친구들과 가볍게 술을 한 잔 하거나 운동을 하기도 했다. 아직 나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당장 두 밤을 자면 나는 수백 명 앞에서 공식적으로 기혼자가 됨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딱히 싱글(single) 생활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이런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니다. 총각파티니, 브라이덜 샤워니 하는 문화도 조금은 유난스럽다고 생각해 오던 나다. 그렇게 미련이 남으면 결혼을 안 하면 되지. 단지 우리네 결혼 문화라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수개월간 쓸데없는데 힘 빼오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준비는 마지막에 후다닥 해치운 느낌이랄까. 사실 결혼식에 뭘 입고 집안끼리 무슨 선물을 주고받는지보다는, 결혼식에 누구를 초대해서 축하를 받고 어떤 식으로 행사를 진행할지 정하는 게 훨씬 중요한 것 아닐까.
그렇게, 이러 저런 생각을 하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체 떼어내지 못한 채로 결혼식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 결혼식 직전에 반지 잃어버리지 않았었나?”
청첩장을 찾으며 시작된 결혼 이야기는 돌고 돌아 나의 치부(恥部)까지 도달했다.
“이, 잃어버리긴 뭘 잃어버려. 그냥 술 마시고 와서 책상 위에 놔뒀다가 땅바닥에 흘린 거지.”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당황한 내가 더듬거렸다.
“그렇다기엔 한 이틀 정도 엄청 찾지 않았어? 완전 사색이 돼가지고선.”
“설마 그게 청첩장 더미 속으로 들어갔을지 몰랐지. 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땐 미안했어.”
그녀의 이어지는 장난에 결국 백기를 들며, 이제는 잘 끼지 않는 결혼반지가 무사히 있는지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따로 청소해 준 적도 없건만, 여전히 반짝이는 녀석을 보니 나도 몇 년은 더 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