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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Oct 04. 2023

마침내, 결혼식(1)

결혼식 치르기 ①



  “결혼한 지 벌써 4년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오래간만에 짬을 내 외식을 나온 우리.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내의 표현이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 건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게. 그동안 진짜 많은 일이 있었지. 이사 가고, 둘 다 한 번씩 이직하고, 무엇보다 임신, 출산, 육아 삼종세트를 맞이했지.”     


  그래도 매년 결혼기념일엔 그럴싸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찾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집에서 아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 알기에 마냥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힘들었다. 긴 얘기 대신 우리는 결혼식 영상을 휴대폰에 띄워놓고 같이 보기 시작했다. 




 결혼식 날이 밝았다. 누군가는 설렘에, 또 누군가는 긴장감에 잠을 못 잔다던데... 나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숙면을 취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다. 몇 달 전이었으면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나 투덜거렸겠지만, 제법 결혼준비를 오래 해본 예비신랑은 이제 이 시간도 빠듯한 걸 알고 있었다.      



  차를 몰고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한 메이크업 샵. 스튜디오 사진 촬영 날 메이크업을 받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여자친구 가족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혼주) 메이크업도 이곳에서 하기로 계약했기에 식전임에도 한 장소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왕 결혼준비에 돈 들이는 거, 부모님도 최고로 좋은 데서 메이크업시켜드리고 싶은 욕심에 한 결정이나, 나중에 들어보니 사돈 간에 불편할까 봐 다른 장소를 예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역시나  상견례 이후 처음 대면하는 양가 가족이 새벽부터 소위 ‘쌩얼’로 마주치는 모습이 보기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혼주 메이크업은 통상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우리처럼 신랑 신부와 같은 장소에서 하는 방법, 부모님들만 따로 메이크업 샵을 잡아드리는 방법, 그리고 결혼식장 대기실로 출장 메이크업을 부르는 방법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는 금세 준비가 끝났다. 화장과 머리 손질까지 30분이나 걸렸을까. 이때쯤 본식 촬영 사진작가 팀도 도착해 있었다. 뭐 찍을 게 있을까 싶은 풍경임에도 그들은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와 여자친구는 물론 가족들도 촬영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결혼식 때 몸에 걸칠 액세서리들을 가지런히 의자에 진열해 놓았다. 시계, 신부 구두, 커플링과 같은 결혼 예로, 이렇게 의미가 담긴 사물을 찍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했다.     


  신부 쪽은 준비가 끝나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고 했다. 메이크업을 받는 여자친구 근처를 기웃대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힘들다며 결혼식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엔 이미 완벽한 것 같은데도 샵 직원은 여자친구의 얼굴 여기저기를 번갈아가며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다.     

      

  슬슬 좀이 쑤셔서 못 견딜 것 같을 때쯤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결혼식 복장을 갖춘 채 샵을 나섰다. 심혈을 기울인 예복과 웨딩드레스, 그리고 장장 2시간 30분에 걸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 덕분이지 우리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호텔에서 제공해 준 차량을 타고(왜 이럴 때 타는 차는 늘 검은색인지 모르겠다) 이동하고 있으려니 벌써 피로가 몰려왔지만, 행여나 머리카락이라도 헝클어 질까 싶어 자세를 꼿꼿이 세운채 마치 벌이라도 서는 양 의자에 앉아있었다. 차량을 타고 내릴 때는 물론 이동 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진촬영 때문이라도 편히 쉬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도착 후엔 대기실에 짐만 옮겨놓고 바로 식장으로 향해야 했다. 사진촬영과 예식 예행연습이 있다고 했다. 예비 신랑과 신부는 잠시 후 결혼식이 진행될 단상 앞에 서서 온갖 포즈를 잡았다. 반지를 교환하고, 웨딩드레스를 휘날리고, 손은 마주 잡고, 서로 이마를 맞대고... 힐 높은 구두를 신은 신부는 헬퍼(스튜디오 촬영때와 마찬가지로 신부의 거동이나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는 이모님이 한 명 배정된다)분의 도움에도 연신 휘청거렸다. 사실 이 날을 대비해 사놓은 웨딩 슈즈가 있었지만, 웨딩플래너가 너무 굽이 낮다는 이유로 당일 ‘킬 힐’을 대여하여 신겨버린 탓에 안 그래도 불편한 드레스 차림에 더해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양가 가족들까지 포함된 사진을 찍고 나서야 우리는 촬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말이 쉬워 가족사진이지 신랑 측인 우리 가족 한 번, 신부 측인 여자친구 가족 한 번, 양가 동시에 한 번을 촬영했고, 신부대기실에서도 똑같은 순서대로 한 바퀴를 돌았다(물론 신랑신부는 모든 촬영에 포함이었다).     


  촬영 후 ‘이따 보자’는 말만 짧게 남긴 채 헤어진 신랑 신부. 그 길로 나는 식장 앞에서, 여자친구는 신부대기실에서 하객 맞이를 시작했다. 손님으로 왔을 땐 여기부터가 결혼식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과연 식이 끝날 때까지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샵에서 촬영한 결혼 예물과 예복. 그땐 왜 찍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것도 다 추억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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