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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Oct 11. 2023

마침내, 결혼식(2)

결혼식 치르기②

  



 신부를 제외한 양가 가족이 모두 모여 식장 입구에서 하객 맞이했다. 온갖 스케줄에 쫓기다 보니 실제로 서있던 시간은 30~40분에 불과했으나 수십, 수백 명을 일일이 맞이하다 보니 한 명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정작 몇 초 되지 않았다. 우리네 결혼식이 대개 그렇듯, 부모님이 초대한 하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내 지인이 한 번씩 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반가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은 내 손님에는 별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엄마, 얘네 알지? 늘 얘기하던 내 대학교 동기들.”     


  “어어 그래, 그래. 안녕?....  어머! 이게 누구야.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아들, 인사해, 엄마 전에 일하던 학교 선생님들. 얘가 00(내 이름)이야. 벌써 커서 결혼을 한다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 순간만은 나보다 훨씬 바쁠 부모님을 위해 내 인맥은 굳이 소개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감사인사는 결혼시작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혹시나 옷매무새라도 조금 다듬을 시간이 있을까 기대한 내 바람과는 달리 안내 직원이 외쳤다.    

 

  “12시 2분 전입니다. 아버님들께선 혼주석에 앉아계시고 어머님들께선 문 앞에 나란히 서 주세요. 그 뒤로 신랑 신부 줄 서실게요,”     


  신부대기실에서 하객들을 맞이하던 여자친구가 어느새 내 옆에 서있었다. 대기실엔 신부 본인의 지인들만 입장하므로 상대적으로 방문객은 적지만, 일일이 같이 사진 찍고 환담을 나눠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신랑, 신부 어머니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결혼식 한 달 여전에 부탁했음에도 흔쾌히 중요한 역할을 맡아준 친구 녀석이 고마웠다. 리허설 때 잠깐 이야기 나눠보니 전날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야근했다던데...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내 차례가 왔다. 벌써 두 어머니께서 인사를 마쳤나 보다. ‘신랑 입장’ 소리에 맞춰 씩씩하게 발걸음을 뗐다. 버진로드를 걷는 내내 플래너와 식장 직원의 조언을 떠올리려 애썼다.

    

  ‘너무 빨리 걷지 말고, 좌우 하객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거나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식후에 친구들이 보내준 동영상 속엔 한쪽 팔을 옆구리에 꼭 붙인 채 나머지 팔만을 힘차게 흔들며 삐걱이는 신랑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사실 이미 신랑 입장을 할 쯤엔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 바로 내가 축가를 불러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크업 샵에서부터 틈나는 대로 흥얼거려 보았으나,  평소에 가사도 완전히 모르던 노래를 일주일 만에 급히 연습하다 보니 갑자기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기 일쑤였다. 내 모습이 마치 시험지를 받기 직전 벼락치기한 내용을 떠올리려는 학생같았다. 주례선생님을 마주한 단상에서까지 계속 가사를 되뇌었다면 사람들이 믿긴 할까.


  신랑 신부의 혼인 서약서 낭독이니, 맞절이니 하는 절차 어떻게 넘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주례선생님의 성혼 선언과 축사, 그리고 양가 아버님의 하객을 향한 인사말씀 덕에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노래를 완창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주례 너무 긴데... 하객들이 지루해 하진 않을까’, ‘(예비) 장인어른은 편지까지 써와서 낭독하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너무 더듬으시네. 평소에 말씀 잘한다고 너무 방심하신 거 아냐?’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곧이어 여자친구와 나란히 서서 사촌동생의 축가를 감상했다. 대학생활 내내 무슨 음악 동아린인가를 계속했다더니 과연 노래도 꽤나 그럴싸하게 잘 불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갈 무렵 터질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냥 남이 불러주는 축가만 들을걸. 하지만 후회해도 어쩔수 없었다. 내 차례가 오고야 만 것이다.


신랑 입장에서 결혼식 증 가장 설레는 순간을 꼽으라면,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는 신부를 맞이하는 장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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