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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Oct 16. 2023

마침내, 결혼식(4) - 최종화

결혼식 치르기④




  폐백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우리의 결혼식이 막을 내렸다. 짧게는 당일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시작된 한나절이, 길게는 양가 인사 후 식장을 예약하면서 시작된 9개월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일단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차에 옮겼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1층에 위치한 호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신랑 신부와 혼주를 위한 식사가 마련돼 있었다. 하객들에게 대접한 메뉴로 구성된 식사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아마 새벽부터 7,8시간은 족히 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느 행사가 그렇듯 손님들이야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주최자는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법이다. 결혼식을 무사히(그리고 나름 성대히) 치렀다는 만족감은 아주 잠시,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먼저 결혼식 비용을 정산해야 했다. 신랑과 신부, 그리고 이제는 사돈이 된 부모님들이 호텔 위층에 별도로 위치한 사무실에 모였다. 정산 담당 직원이 식사는 몇 인분이 서빙됐는지, 와인은 몇 병이 나갔는지 등을 세세히 설명하더니 영수증을 내밀었다. 비용이 예상한 범위 내라 내심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제 막 가족이 된 두 집안이 모여서 처음 하는 일이 돈 계산이라는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들었다(결혼식 비용은 하객수에 따라 좌우되므로, 어떤 집들은 각자의 하객수에 비례해서 내기도 하지만 우리는 양가가 반반 부담하기로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의 행선지는 신혼부부마다 천차만별이다. 간혹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달려가는 커플을 볼 수 있는데, 막상 결혼준비를 해보니 그들은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정리할 이 많은 짐을 두고 해외로 나간다는 게 우리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커플이 결혼식 다음날 신혼여행을 떠나지만, 여자친구(이제는 아내가 된)가 그것도 힘들어했기에 우리는 결혼식 다다음날을 출발일로 잡은 터였다.      


  짐이 가득한 차를 몰고 우리는 신혼집으로 향했다. 너무 일찍 구해놓은 탓에 몇 달간 가재도구와 살림살이만 채워놓은 빈집에 드디어! 입주하는 것이다. 그동안 상견례를 비롯한 모든 행사의 마무리는 밤에 집에서 부모님과 조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님께 '나중에 봬요'라는 재회시점이 불분명한 말만을 남기고 우리 둘만의 공간으로 향하는 것이다. 결혼했다는 것이 처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신혼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이었다. 정오(丁午) 결혼식이어도 집에 오면 이 시간인데, 저녁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에 집에 들어가는 걸까. 몸은 피곤하지만 아직 긴장이 안 풀린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선 환경 탓인지도 몰랐다. 그제야 서로 고생했다는 독려의 말을 주고받고 우린 또다시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몇 시간 만에 제대로 들여다본 휴대폰엔 읽지 못한 수많은 '1' 표시가 남아있었다. 결혼식에 온 친구들은 직접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며 다시 한번 메시지로 축하를 전했고, 오지 못한 친구들은 그들대로 비록 결혼식은 가지 못했으나 행복하게 잘 살라며 덕담을 보내왔다. 답장을 포함하여 직접 와준 지인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일일이 보내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밤에는 축의금을 정산했다. 봉투에 쓰인 이름과 그 안에 들어간 현금 액수를 매칭하여 엑셀로 정리했다. 역시나 대부분이 부모님 쪽 하객들이 넣은 봉투였기에, 낯선 이들 사이에서 친숙한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를 넣었을까 예상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은근히 스릴 있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어? 얘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만큼이나? 뭐야, 나는 분명 얘 결혼식 때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어이쿠, 누가 절친 아니랄까 봐... 이렇게 까지 안 챙겨도 되는데.’     


  직접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건만 액수에 따라 상대에 대한 그동안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는 내 모습이 속물같이 느껴지는 한편, 나에게 축의금을 받은 사람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그동안 축의금을 넣을 때 조금 더 신중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총액을 따져보니, 얼추 결혼식장에 쓴 비용은 회수된 것 같았다. 밤늦게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몰웨딩이 로망임에도 결국 포기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평생 경조사비를 뿌린(!) 부모님 세대는 우리보다 하객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다음날도 여전히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신혼여행을 하루 뒤로 미룬 여자친구(이제는 아내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다)의 혜안(慧眼)에 감탄했다. 오래간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뒹굴거리다 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혼식 당일에 비하면 시간이 열 배 정도는 빨리 흐른 것 같았다. 어제까지의 그 번잡함이 마치 한순간의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보다 더 기대한 신혼여행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집 앞에 나오니 호텔에서 제공한 커다란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실내에 꽃장식까지 되어있는 이 녀석이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이동 내내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공유했다. 몇 달간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틈틈이 비행기와 숙소, 그리고 렌터카를 예약했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와 식당 리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황금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공항은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겨우 그 정도로 나의 홀가분한 기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행기가 뜨고,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하나의 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는 이제 결혼을 했고 부부가 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 기분으로, 묵은 감정은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겠지. 우리는 잘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결혼 준비하는 남자가 해서는 안 되는 착각’, 그 마지막은 뭐야?"     


  결혼식 영상이 종료되자 아내가 말했다.      


  “대망의 1위는 바로! 모두가 이성적인 결정을 할 거라는 착각.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일이어도 얼마나 비합리적인 결정이 많은지...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결정이 감정의 영역이었던 거 같아. 상견례도, 신혼집도, 예단도. 그럴 거면 차라리 본인의 감정을 순순히 인정하면 좋을 것을, 애써 합리적 인척 하다 보니 문제가 더 커지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는, 우리 결혼준비 과정을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하겠어?”     


  “음...”     


  평소 아내의 생각하는 시간이 길수록 폭탄발언이 나온다는 걸 잘 알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한 마른침을 삼켰다. 고심하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그냥...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경험? 남들이 왜 결혼 준비 두 번 못하겠다고 하는지 알겠어.”     


  역시나, 그녀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후, 표현이 너무 과격한 거 아냐? 그래도 준비하면서 소소하게 즐거운 일도 꽤 있었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결혼준비 시작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건 하나도 없었거든. 그게 경제적인 문제든, 시댁의 반대든 간에.”     


  프러포즈 늦게 한 것 때문에 아직도 아내에게 시달린다는 남편들의 사연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렇다. 남자에게 결혼준비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결혼생활의 첫 단추였던 사건인 것이다. 잘 못 꿴걸 억울해 해봤자 어쩌겠나. 그래도 결혼해서 어찌어찌 잘 살고 있는데.      


신혼여행날 아침 우리를 맞이해 준 웨딩카. 보통 결혼식장에서 집에 올 때 많이들 타지만, 신혼여행날 타니 축복받는 기분으로 떠나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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