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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Aug 11. 2023

저, 결혼합니다(2)

청첩장 나눠주기 ②

 



  청첩장 모임 일정을 잡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청첩장을 나눠줄 정도의 친분'에 대한 정의였다. 누구에게 직접 만나서 실물 청첩장을 줄지, 누구에게 모바일 청첩장을 보낼지도 고민이었다. 통상 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겐 밥이나 술 한 잔 사며 직접 청첩장을 건네는 것이 우리네(?) 문화이기 때문이다.


  숙고(考) 끝에 완성한 리스트엔 원래는 가까웠지만 지금 직접 만나기엔 어색한 사이도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별다른 교류가 없음에도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과 같은 그룹에 묶여 있는 학교 동창들, 나에게 직접 청첩장을 준 적 있는 (지금은 조금 어색한 사이인) 전(前) 회사 동기 등등... 단순히 심리적 거리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기준이 적용된 결과를 보니, 그동안 내가 받아왔던 청첩장에도 결혼 당사자들의 많은 고민이 묻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대부분이 직장인인 지인들과 한정된 시간 내에 약속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특정 집단에 속한 여러 명을 동시에 보기 위해선 시간은 물론, 모이는 위치도 모두를 고려해서 정해야 했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 같이 볼 수 사람은 최대한 같이 보고, 그래도 시간이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개별 약속을 잡았다. 그 결과청첩장이 배송된 순간부터 결혼식 바로 전 주까지, 내 달력은 모임 일정에 대한 메모로 그 어느 때보다 빽빽해지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막상 사람들을 만나서도 썩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 결혼을 핑계로 오랜만에 본 친구들은 그간의 세월을 메꾸기라도 하듯 살아온 이야기와 근황 토크를 꽃피웠고, 자연스레 모임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만나서 반가웠고, 결혼식날 보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읽으며 꾸벅꾸벅 졸기를 몇 주, 체력은 체력대로 바닥나고 슬슬 살이 찌는 것이 느껴졌다. 결혼식까지 조금이라도 나은 외모를 만들기 위해 몇 달간 열심히 운동해 왔건만... 결혼을 앞둔 신랑들이 그렇게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막상 식장에서 똑같아 보이는 건 이 때문이었을까.      


   비용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이미 결혼준비로 그간 모은 돈을 탕진(?)해 버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내가 대접해야 하는 모임을 계속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꽤나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아낄 수도 없는 자리. 결국 신용카드라는 마법으로 미래의 나에게 부담을 전가하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불안을 지웠다(물론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오프라인(off-line) 청첩장 모임이 내 노력과 체력의 문제였다면, 모바일 청첩장 전달은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과정에서 뇌력(腦力)을 소진하는 일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얘는 지난 몇 년간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결혼한다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갑자기 ‘띡’ 청첩장만 보내는 몰염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친하다고 생각되는, 또는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링크 주소를 보내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결혼 사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준건 당시 회사 직속상사였던 형님이었다. 나보다 5,6년쯤 전에 결혼했다는 그는 식사 중 털어놓은 나의 얘기에 잠시도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      


  “일단 다 보내. 그걸 왜 고민해. 결혼식에 올 정도의 친분인지 아닌지, 부조를 할지 말지도 상대방이 판단할 문제야. 물론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중에 의외의 사람이 자기한텐 왜 안 알렸냐고 서운해 할 수도 있어.”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받을 상대의 부담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내가 사전에 정의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애매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도 일단 모바일 링크를 모두 보냈다. 청첩장에 첨부된 스튜디오 사진 속의 우리 모습이, 불과 두어 달 전임에도 오랜 옛날처럼 느껴졌다. 오래 고민한 시간에 비해 청첩장을 ‘뿌리는’ 시간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막상 지르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후련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청첩장을 돌렸다. 작은 회사 특유의 빠른 소문으로 인해 이미 내 결혼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그 덕에 별 부담 없이 금세 회사를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장을 전달할 때쯤, 휴대폰이 울렸다. 웨딩플래너에게 온 메시지로, 결혼식 때 입을 신부 드레스를 맞출 때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청첩장 모임 때 술에 질린 탓인지, 결혼 후 한동안 금주(禁酒)하며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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