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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l 27. 2023

결혼, 그 평균이란 함정(5)

예단, 예물 주고받기 ⑤





  몇 년 전부터 신부 예물로 명품 브랜드 가방, 소위 ‘명품백’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 된 걸 알고는 있었다. 다만, 정말로 내가 그걸 고르러 같이 백화점에 오게 될 줄이야. 심지어 특정 제품군은 인기가 많아 돈이 있어도 못 산다고 했다. 워낙 소량이 수입되는 탓에 줄을 서있다가 백화점 개점 시간에 맞춰 매장에 입장하는 ‘오픈런’이 성행하기도 하고, 연락처를 남긴 후 원하는 물건이 입고되었다는 전화를 받으면 회사에 바로 휴가를 내고 매장으로 달려가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여자친구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기에, 원래 휴가 예정이었던 날 하루를 골라 느즈막이 백화점으로 향했다. 혹시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어떡할지를 고민하면서. 그런데 웬 일. 그녀가 가지고 싶다던 가방이 보란 듯이 진열되어 있는 것 아닌가. 망설임 없이 ‘엄카(엄마카드)’로 결제를 마친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데이트에 할애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의외였던 것은 끝까지 C사(社) 제품을 고집하던 여자친구의 태도였다. 취직 후 첫 몇 년간 자기 돈으로 ‘명품백’을 사보니 이제는 별로 관심도, 미련도 없다는 그녀였다. 그런데 막상 가방을 고를 때가 되니 다른 브랜드는 절대 안 된단다. 결혼예물 아니면 언제 자기돈 내고 이런 걸 들어보겠냐며.      


 “오빠, 나도 여자야. 다들 로망인 C하나 정돈 들고 싶지 않겠어?”     


  내가 딱히 명품 소비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말 이런 소비가 유행이 된 걸 내 눈으로 보고, 내가 그 일원이 됐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주 주말에는 예물 반지를 맞추러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우리 부모님도 함께였다. 어머니는 시종일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예비 며느리를 데리고 다니며 백화점을 누비는 모양새가 썩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형 결혼 때도 형수에게 선물하셨다는 그 브랜드는 또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우리만 ‘특별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내친김에 목걸이까지 세트로 보여달라는 호기로운 어머니목소리와는 반대로, 나는 왠지 모르게 자꾸 여자친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앞서 프러포즈 반지를 고를 때 그녀의 일관된 취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내용물은 소박하더라도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하는 그녀이기에,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브랜드에서 이것저것 선물을 고르는 것에 거부감이라도 티내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받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이미 원하는 가방을 손에 넣었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 하나 정도는 결혼 때 받고 싶어한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시어머니에 대한 예의를 차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결혼준비를 하며 또 하나 깨달은 점은 별말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일에는 굳이 원인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고민해야 할게 산더미인데, 괜히 상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부모님께서 여자친구에게 출퇴근용 옷까지 한 벌 선물해 주며 그날의 쇼핑은 끝이 났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예물 이슈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금쪽같이 키운 내 자식이 상대 집안에서 대접받기를 바라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보통 결혼할 때 신랑한테 00 정도는 신부 측에서 해주던데’, ‘그걸 왜 네가 해줘? 넌 따로 뭐 받았어?’ 같은 대화가 몇 번 오간 결과, 결혼식을 목전에 뒀을 무렵 우리에겐 예상외의 아이템들이 몇 개 더 생긴 후였다. 양가 부모님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사달라는 말은 못 한 채 우리 각자의 돈으로(안 그래도 결혼준비 하느라 쪼들리는데) 서로에게 선물을 했으며, 어떨 때는 ‘내돈내산’ 해놓고 선물 받은 척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결혼식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모두의 관심사가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우리는 길고 길었던 예단과 예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기야, 나 오늘 친구 결혼식 가는데 내 시계 어딨는지 알아? 결혼할 때 받은 거. 오랜만에 한번 차 보려고 했더니 없네?”     


  “아 그거? 이사 오면서 내 예물 반지랑 같이 놔뒀는데?”     


  “그러니까 네 반지는 어딨어?”     


  “글쎄... 늦었는데 그냥 가. 여름이라 날씨도 덥잖아.”     


  분주하게 집 여기저기를 뒤지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게 현실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아무도 막지 못한.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결혼준비하며 해서는 안되는 가장 큰 착각은 바로 '평균'이나 '일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 


결혼예물로 받은 시계. 부담을 주고싶지 않아 개중 저렴한 모델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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