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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l 20. 2023

결혼, 그 평균이란 함정(4)

예단, 예물 주고받기 ④

  



  예단 논쟁이 막을 내린 지 1주, 아니 2주쯤 흘렀을까. 마침내 여자친구가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예비 시댁을 방문했다. 현금 예단을 주고받기로 한 결정이 무색하게 그녀의 작은 차엔 온갖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여행용 캐리어에서 하나하나 등장하는 아이템들은 얼핏 봐도 고급 브랜드임이 분명했다.


  예비 장모님의 선택이었음이 분명한 이 과한 선물에서 단순히 우리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넘어선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현금 예단은 했으니, 나도 내가 원하는 선물을 하겠다’라는 완고 함이랄까. 그 사이에 끼어있는 수표를 담은 봉투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규모에 비해 전달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실에 짐을 내려놓은 채 차 한잔 정도를 여자친구에게 대접하고 끝났던 것 같다. 다만, 그 자리에서 티는 내지 않았으나 예상보다 방대한(?) 양의 선물에 어머니께선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자친구가 돌아가기 무섭게 신부 예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미 현금으로 주고받기로 약속한 마당에 더 얘기할 거리나 있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번에도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머니의 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여자친구가 알아서 원하는 물건을 사라고 돈으로 줄 예정이었으나, ‘일반적으로’ 주고받는 예물 ‘평균금액’(또 마법의 단어가 등장했다)으로는 요새 유행인 명품가방 하나 변변하게 못 살 것 같기에 직접 같이 가서 원하는 걸 사주시겠단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의도를 떠나서 먼저 부아가 치밀었다. 애초에 번거롭다고 현금으로 주고받자던 사람이 누군데... 신부 예물은 직접 사준다고?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여기고 있던 차에 또다시 새로운 이슈가 생기자, 그동안 결혼준비 과정에서 쌓인 정신적 피로가 갑자기 온몸을 덮치는 느낌이었다.



  결혼 전 예비 며느리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다느니, 예단을 생각보다 너무 많이 받아서 더 많이 해줘야 하겠다느니, 당신이 잘 아는 보석집에서 반지를 해주고 싶다느니 하는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설명은 다 생략하고 여자친구에게 결론만을 말했다.


  “... 그래서 같이 갈 거야? 현금 예물 받으면 원래 가방 산다고 그랬었지? 가방은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고르면 계산만 해주시겠대. 반지는 엄마가 아는 집에 같이 갔으면 하시더라.”


  “아 그래? 가방은 아무거나 골라도 돼? 나 C사(社)거 사고 싶은데.”


  그런 게 어딨냐며 난리 칠 걸 예상했는데. 여자친구의 반응은 의의로 덤덤했다.

 

  ‘뭐지, 얼마 전에 내가 폭발해서 이번엔 바로 양보해 주는 건가? 넌 뭐 하나 한 번에 넘어가는 게 없냐며 좀 심하게 말하긴 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뒤로하고 들어간 명품 매장. 그녀가 ‘찜’한 가방의 가격표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역시 여자들은 무섭다.      


예물로 여자친구가 고른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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