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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Aug 02. 2023

저, 결혼합니다(1)

청첩장 나눠주기 ①




  "자기야, 이게 뭐야? 아직 한 묶음이나 남았어."     


  책상 서랍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한 무더기의 종이봉투. 다름 아닌 우리의 청첩장이었다.     


  " 기념으로 몇 장 남긴 건 따로 있는데, 이만큼이 또 있는 줄은 몰랐네. 어떡하지? 버릴까?" 


  봉투 하나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한 페이지엔 결혼식장 주소와 함께 간단히 그려진 약도, 그리고 다른 한쪽엔 결혼식 초대 문구가 쓰여있었다. ‘소중한 인연’이니 ‘사랑의 결실’이니 하는 추상적인 단어로 시작하여 결국 ‘와서 축하해 주세요’로 끝나는 청첩장의 내용은, 최근에 회사 동료에게 받은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놔두자. 정리는 나중에 이사라도 갈 때 다시 생각해 볼까?”     


  결혼식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고생의 결과를 허무하게 처분할 수 없다는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서였을까. 우리의 청첩장은 그 수명을 연장하고 다시 서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마침내! 결혼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중간중간 쉬어간 기간도 있었지만, 처음 결혼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8개월 가까이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제 결혼식에 손님을 초대하는 일과, 어떻게 식(式)을 진행할지 정하는 것만이 남았다.          




  먼저 우리의 결혼을 알리기 위한 청첩장 제작에 돌입했다. 과정은 그간 해온 준비에 비하면 단순했다. 인터넷을 통해 마음에 드는 업체를 알아보고 청첩장 샘플을 몇 장 디자인별로  받아 본 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인쇄할 내용을 전달하고 주문하면 된다. 휴대폰 문자나 메신저로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청첩장은 어느 업체나 서비스로 해준단다.     



  수개월간 단련된 손품 팔기 실력으로 금세 마음에 드는 업체를 추려 샘플 배송을 요청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고른 두 개의 업체가 결국 같은 회사였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가 선택한 곳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부분의 청첩장 브랜드가 한 회사의 소유였다. 그간 수많은 청첩장을 받아보며 왜 하나같이 B사(社)의 로고가 찍혀있는지 품었던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고를 제품의 시장이 독점 체제인걸 알게 되자 ‘뭘 고르든 그게 그거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빠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샘플로 받은 10장의 카드를 살피는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청첩장 문구를 끄적여봤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잘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각종 샘플 문구가 동봉되어 있었다.     


  고민 끝에 디자인도, 문구도 튀지 않고 무난한 느낌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나 역시 청첩장을 받는 입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날짜와 장소가 중요할 뿐 그 외의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필요 이상으로 ‘오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굳이 기억나는 청첩장을 꼽자면 언젠가 연애도중 3년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실을 밝힌 커플이었는데... 우리는 그 정도 특이한 사연도 없거니와 있어도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샘플 문구를 그대로 쓸 순 없어 이리저리 손을 대다 보니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기존 문구를 적당히 차용하고, 우리만의 단어를 조금 추가하고, 그러다 과하다 싶은 표현과 너무 진부한 표현을 빼는 작업을 거쳤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의 얼음이 다 녹아갈 때쯤 완성된 우리의 청첩장은...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열한 번째 샘플 문구처럼.     



  주문한 청첩장은 일주일 남짓한 제작기간을 거쳐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당도했다. 부모님께서 각각 필요한 만큼을 가져가시고도 방 한편에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보며 나도 직접 만나 나눠줄 사람들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간 내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생각해 왔건만, 1차로 작성해 본 리스트에 많은 이름을 적진 못했다. 다 나눠주고도 수십 장은 남을게 뻔하다는 결론에 이르자 뒤늦게 여자친구 말을 안 듣고 (넉넉한 게 낫다는 핑계로) 청첩장을 과도하게 인쇄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고민 끝에 고른 청첩장. 지금 봐도 깔끔하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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