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눅눅한과자 Aug 18. 2023

저, 결혼합니다(3)

웨딩드레스 고르기

  



  오랜만에 와보는 청담동 웨딩거리. 익숙하게 골목을 운전하고 주차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스드메'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던 그때에 비해 나름 결혼준비 경력자(?)가 된 듯한, 조금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약한 드레스샵에 도착하니 몇 달 전 처음 방문했던 때가 생각났다. 사실 그때가 진정한 의미의 ‘드레스 투어’를 한 시기이기도 했다.



  스튜디오 사진을 찍기 두 달쯤 전, 웨딩드레스를 맞출 후보 업체 세 군데를 정하여 방문했다. 이때까진 실제로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드레스를 맞출지 정하는 과정이다. 샵 별로 약 4~5벌 정도의 드레스를 입어본 후 이미지나 느낌을 비교하는데, 아직 신부 체형에 맞춘 드레스가 아니기에 조금은 얼기설기 걸친 느낌도 났다(그럼에도 웨딩드레스의 복잡한 구조 탓에 갈아입는 시간을 포함하면 한 곳당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집에 돌아가 노트에 적은 메모를 뒤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왜인진 모르겠으나, 업체와 정식 계약하기 전까지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했다. 연필로 그린 어설픈 그림과 글로 묘사한 드레스의 생김새를 보며, 커튼 너머에 있던 여자친구의 모습을 다시 기억해 내려 애썼다. 구경이나 해볼 양으로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의 업체도 후보에 넣었으나, 결국 선택한 곳은 (우리 성격대로) 고급스럽되 무난한 느낌의 샵이었다. 계약을 마치고 나서, 이번엔 실제로 입을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다시 한번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 첫 ‘투어’ 때 허용되지 않던 촬영도 이때부터 가능했기에,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을 찍으며 정성스레 평가를 하다 보니 한 벌다 갈아입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보다 비교도 되지 않게 오래 걸렸다.


  스튜디오 촬영용 드레스는 세 벌을 골랐다. 더 고를 수도 있다고 했지만, 드레스 샵에서도 한 번 갈아입는데 10분이 족히 걸리는 옷을 막상 촬영 현장에서 갈아입을 생각이 하니 그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았다. 10여 벌 정도 입어 본 것 같지만, 자세한 이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a라인이니, h라인이니 해서 몸에 붙는 정도라든가, 팔과 어깨를 드러내느냐 아니냐 등 큰 차이만 눈에 들어올 뿐 디테일한 장식은 다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익숙하지 않은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은 구분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결혼준비 씬(scene)을 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과정이 나온다. 굳게 닫힌 커튼이 양쪽으로 열리며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등장하고, 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신랑은 입이 떡 벌어진다. 마치 살면서 이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다는 표정을 짓는 배우들의 연기는 웨딩드레스엔 어떤 마력(魔力)이 깃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신부를 향한 극찬 세례는 그 덤이고.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스크린 속과 사뭇 달랐다. 일단 드레스 샵엔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내가 동행했다(첫 투어 때는 여자친구 아버지도 동행하셨는데, 한 번 경험했으면 됐다는 생각인지 다음부턴 오지 않으셨다). 어떤 예비신부들은 친구들과도 온다고 했지만, 여자친구의 진중한 성격상 우정을 도모할 친구들보다 냉철하게 본인에게 어울릴 옷을 골라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우리는 최대한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에 집중했고 자연히 피팅룸의 분위기는 감동, 화기애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 이건 다 괜찮은데 팔에 망사가 없는 게 낫지 않을까요? 조금 답답한 감이 있어서요.”     


  “그러게. 그리고 확실히 오프숄더(off-shoulder)가 어울리네. 한 번 뒷모습도 보여줄래?”     


  “엄마, 이건 어때? 방금 전에 입어 본거랑 너무 비슷한가. 다시 입어봐?”          



  촬영용 드레스 다음엔 본식(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를 따로 골랐다. 본식 드레스는 비전문가가 한눈에 봐도 촬영용과는 차이가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워 보였다. 웨딩플래너의 설명에 따르면 두 종류의 드레스는 처음부터 용도별로 따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본식용으로 몇 번 사용된 드레스를 촬영용으로 리폼하기도 한단다.      


  이미 입장한 지 두 시간이 다 되어가건만, 다시 한번 열정을 발휘했다. 이번엔 훨씬 더 신중을 기했다. 촬영용 드레스야 막상 받았을 때 마음에 안 들면 한 벌 때쯤 안 입고 촬영해도 그만이지만(게다가 사진은 보정도 가능하다), 본식 드레스는 지금 고르는 옷을 무대 위에서 선보여야 하기에 이 과정이 은근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옷과 씨름한 끝에 본식 드레스 두 벌을 골랐다. 한 벌은 결혼식 1부 때 입을 드레스인데 1부란 흔히 결혼식 하면 떠오르는, 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성혼선언을 하는 예식을 말한다. 나머지 한 벌은 2부, 즉 예식 후 식사시간(피로연)에 하객들에게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자리에서 입을 용도였다. 샵 직원의 추천에 따라 1부 드레스는 화려하고 전형적인 디자인을, 2부 드레스는 조금 더 평상복 느낌의 활동이 편한 디자인을 골랐다.           


  결혼식 직전에 한 번만 더 오면 된다는 안내를 받으며 드레스샵을 나섰다. 이곳을 또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몇 달 사이에 신상품이 나올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바꿀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고, 나머지 하나는 최대한 결혼식에 인접해서 가봉(假縫)을 해야 그 당시의 신부 체형에 완전히 맞도록 드레스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을 지금, 네 달이 지나서야 하고 있는 것이다. 길고 긴 두 번의 드레스 투어에 대한 회상을 마치니, 어느새 여자친구가 사이즈 계측(計測 )을 마치고 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 사이 새로 출시된 드레스 중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전에 골랐던 드레스로 정했다고 한다. 드레스는 이제 최종 피팅(fitting) 작업 후 결혼식 며칠전이나 돼야 다시 볼 수 있단다. 혹시나 새로운 드레스를 입어보게 되면 한 번쯤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우와~’하고 놀랄(또는 놀랄 척할) 준비가 되었건만, 더 이상 그럴 기회가 없음이 아쉬웠다. 한편으론 반년 이상이 걸린 '스드메'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진짜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실감이 났다.



드레스를 고르며 찍은 사진. 감탄사는 못 들려줬지만, 그래도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예뻤다.




이전 13화 저, 결혼합니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