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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Nov 06. 2023

2. [일하자 편] 야근하려면 야근신청 해야 해요?



   새 회사로 이직한 뒤 깨달은 점이 있다면 '경력직은 괜히 뽑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신입사원 대비 더 많은 인건비를 들여서 굳이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회사에 산적한 업무(문제)들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단련된 직원의 경험과 능력을 '뽑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사 3개월 만에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었다.


  1주일당 최대 근로시간을 기존의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한 것으로, 대기업은 2019년에 바로 시행되었으나 인력이 부족한 소기업들에겐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 제도이다.


  하지만 이 유예기간 동안 착실히 준비해 온 회사가 얼마나 될까. 이 회사도 1년 반을 허송세월한 후 기한이 6개월 남자 부랴부랴 경력직인 나를 채용하여 준비를 맡긴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 과정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어 생략한다 - 근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간신히 시행일을 맞출 수 있었다. 소위 '야근'이라 불리는 지나친 연장근무를 막기 위해 회사 PC는 이제 칼같이 오후 6시에 꺼지게 되었고, 더 일하고 싶으면 연장근무 신청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6개월쯤 지났을까? 처음엔 귀찮다고 아우성치던 직원들도 슬슬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 갈 무렵,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저 A 차장인데요, 혹시 야근하려면 야근신청 올려야 하나요?
 

    "네? 무슨 뜻이시죠?"


   내가 혹시 잘 못 들은 걸까. 전 직장에서도 수많은 질문에 단련돼 온 나다. 꽤나 말귀가 밝은 편이라 자부했는데,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이람.

 

   질문의 뜻은 문자 그대로였다. 시스템 도입 후 아직 야근 신청을 한 번도 올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이걸 해야 되는지가 궁금한 것이었다.


    당혹감과 짜증이 섞였다. 왜, 밥 먹으려면 밥을 해야 되냐고 물어보지? 혹시 반년 간 6시 넘겨 일해본 적이 없는 건가? 하여튼 여기 참 좋은 회사... 가 아니지, 이 사람 매일매일 밥먹듯이 야근한다고 소문난 분 아냐? 결혼도 안 하고 허구한 날 일만 한다고 아저씨들이 잔소리하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궁금증이 모든 감정을 덮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 노력하며 물었다.


   "차장님, 그럼 혹시 그동안은 어떻게 야근하셨어요? 처음 시스템 도입할 때 연장근로 신청 매뉴얼 공지했는데."


   "아, 그거요. 내용이 복잡해서 잘 안 읽히더라고요. 6시 지나면 팀에 있는 공용 PC로 옮겨서 일했어요. 작업 중이던 자료는 USB나 메일로 보내놓고"



  맙소사. 말이 거창해서 매뉴얼이지 1/4페이지도 안 되는 그걸 제대로 안 읽어서 6개월간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게다가 그 공용 PC가 점검 중이라서 이제야 야근신청법을 문의한단다. 


  그래도 어쩌겠나. 친절하게 고객센터 직원 같은 역할을 해야지. '프로그램 켜시고, 신청 버튼 누르시고, 시간 입력하시고, 확인 버튼 누르세요'라고.


  

  그 차장님은 이제 부장님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 당황케 했던 것 이상으로 엉뚱한 질문들을 쏟아내며 날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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