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대작전(2)

청혼하기②

by 눅눅한과자




고민 끝에 프러포즈 반지는 웨딩밴드(커플링 용도의 결혼반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형의 결혼 준비 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우리 집에서 예물 겸 다이아 반지를 따로 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브랜드를 살지, 여자친구의 반지 사이즈가 얼마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고르게 하면 되니까. 그간(?)의 경험상 여자에게 주는 선물은 고르는 정성보다 상대의 마음에 드는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그래서 깜짝 선물은 늘 실패하나 보다).



양가에 인사는 한 번씩 오갔지만 아직 구체적인 결혼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커플링을 보러 가자며 그녀를 백화점에 데려갔다. 그리고 미리 검색해 둔 대로 ‘럭셔리 부티크·주얼리’ 코너를 둘러보았다. 누구나 알법한 유명 브랜드를 시작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브랜드를 거쳐 최근 떠오른다는 브랜드까지. 평소 절대 갈 일 없던 매장들이 그날따라 새롭게 보였다.


(사실 서울시내 귀금속 거리의 금은방에서 반지를 맞출까 생각도 했었다. 네임밸류 대신 실속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브랜드리스(brandless) 상품에 대한 그녀의 경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데스크톱을 살 때 S사 기성품이 아닌, 조립 컴퓨터를 맞춤 주문했다는 걸 알고서 기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녀와 나의 쇼핑 취향 차이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웨딩밴드’라는 단어였지만 점원들은 그 말을 듣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상품을 추천해 주었다. 각 브랜드별로 상이한 특징과 콘셉트가 있었으나 가격 책정 방식은 모두 비슷했다. 당연히 큰 보석이 박혀 있을수록 비쌌고, 같은 디자인이면 남자 반지가 더 고가였다(사이즈가 커서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제일 먼저 들어가 본 매장은 신혼부부 커플링의 정석(?)으로 통하는 T 사와 C 사. 워낙 고가로 유명한 브랜드다 보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커플이 구매한다는 인기 모델을 보고 안심하는 한편 실망했다. 가격은 명성에 비해 합리적이나, 디자인은 수수하다 못해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심플했기 때문이다. 특히 C사의 경우 투박한 민무늬 바탕에 해당 브랜드의 로고가 커다랗게 찍힌 모습이 마치 ‘우리 명품이잖아. 디자인이고 뭐고 그냥 브랜드만 보고 사’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다이아몬드가 중앙에 박힌, 누가 봐도 화려한 반지들은 터무니없이(물론 내 기준으로) 비쌌다.


수백~천만 원이 넘어가는 그 반지들에 박힌 보석의 크기는 ‘영점 몇 캐럿’ 이란다. 보석의 크기를 계량하는 방식이 ‘캐럿(carat)’이고 반(half) 캐럿 짜리 반지도 존재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또 가상화폐처럼 0.1캐럿, 0.3캐럿 이런 식으로 잘게 쪼개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등급에 따라, 인증기관에 따라 퀄리티도 천차만별이라 하고....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다이아 반지는 예물 할 때 다시 알아볼 거, 커플링으로의 목적을 위해 소박한 기본 링만을 착용해 봤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녀본 결과 일본 브랜드라는 L사와 ㅌ사가 제일 괜찮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녀도 유명 브랜드에 대한 로망은 있었으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해당 브랜드의 기본 모델을 선택하는 탓에 주변에 너무 흔해서 싫다고 했다. 특히 T사의 ㅁ모델이나 C사의 ㄹ모델 같은 경우는 워낙 '국민 반지'로 유명해서 그걸 끼고 다니면 회사 누군가와 겹쳐 커플로 오해받는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돌고 있었다.



일단 시장조사만 마치고 각자 집에 돌아간 그 주 주말, 나는 비밀리(?)에 혼자 L사 매장을 방문해서 프러포즈용 반지를 주문했다. ‘캐럿’ 자가 붙을 정도의 커다란 보석은 없지만 링 전체를 둘러싼 홈에 작은 점처럼 촘촘하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너무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녀석이었다. 다만, 이 브랜드는 주문 즉시 맞춤 제작하기 때문에(그것도 해외에서!) 입고될 때까지 한두 달은 기다리란다.


때는 이제 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결국 나는 프러포즈 일정을 이웃나라 보석장인의 손에 맡긴 채 뒤로 미뤘고, 그 사이 우리는 결혼식장을 먼저 보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늦어진 일정, 나는 깜짝 프러포즈라는 로망 실현을 위해 여자친구가 절대 예측하지 못할 날을 D-day로 잡았다.


반지.jpg 프러포즈에 쓰인 반지. 결혼 이후에도 우리의 커플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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