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쓰는 일기 #1
붉은 빛이 뜨는지 가라앉는 건지
감이 없고
잔은 몇번 들지도 않았는데
아래가 저리고 힘이 빠진다
무거운 머리를 겨우 추슬러 들어보니
십년지기라는 것들이 비척거리고
뻔한 돼지고기 수육
역한 홍어
맛이 가버린 시래깃국
물에 우유를 떨어뜨린 양 비리다
신발 정리하던 고모부가
조문객들과 악수를 하자
어느새 난 상주자리에 손 모아 서 있었다
스스로 일어나는 바닥에 이마 한번 대고
양말 한번 구경하고 나니
또 십년 전 그 징그러운 놈들과 같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육 앞에 앉아 숨쉬고 있다
이것들아 상갓집에선 짠 하는 거 아니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