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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발까마귀 Jun 24. 2021

서머셋 몸 <면도날>

그리고 남겨진 우리들

이 소설은 작가 본인이 화자가 되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프랑스의 상류층 사회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며 우리가 좋아하는 막장드라마의 요소들도 다분히 들어있다. 하지만, 여기에 ‘래리’라는 문제적 인물이 추가되면서 이 소설은 인간의 삶의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할까. 아무도 인간의 삶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이전에 만들어진 길을 걸으면서 살아간다. 태어나서 학교에 다니면서 생존에 필요한 것을 배우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생존과 인간관계다.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서 파생되어 나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면서 복잡해지는 것이다.
 
 래리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도대체 우리의 삶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존재적 위기를 겪고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 여러 종교적 수행을 탐구하면서 결국 그는 인간세상에서 계속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다른 이의 시선에서는 래리가 현실을 도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약혼녀 이사벨은 백수인 그가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녀의 관점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데 남편이 백수고 일에 관심이 없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돈 없이 살 수 없다. 결국 그녀는 래리 대신 부잣집 아들과 결혼해서 그녀가 원하는 상류사회의 삶을 계속해 나간다. 


이 소설에서는 그 외 여러 인간군상들이 등장하면서 삶이란 어떤 본질을 다각도에서 보여 준다. 물론 여기에 답이 있을 수 없고 판단은 우리 몫이다. 아무리 잘난척하며 인생은 00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도 우리 모두 삶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에 장담하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래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분명 삶에는 ‘먹고사는 일’과’ 인간관계’ 말고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인간의 삶은 길어봐야 100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이미 지금 죽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쓴 작가도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여기 지금 삶에 남겨진 우리들이 있다. 과연 우리는 생존과 인간관계 문제 말고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자기 파괴와 냉소주의, 무료함, 그리고 은행계좌 속 숫자와 스트레스 푸는 것 말고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을 잃어 방황하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 즉 우리에겐 어떤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소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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