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글과 영화로 진리를 탐구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소회

by 금발까마귀

20대 초, 나는 우연히 인도여행을 갔다가 명상을 접하고 종교적 깨달음에 큰 관심이 생겼다. 딱히 인생이 불행했다거나 부처님처럼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속세에 미련이 없어지거나 그런 건 없었고 단지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 말고도 이 세상에는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명상/철학/심리 관련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무렵 영화에도 관심이 생겨 철학적 깊이가 있는 영화들을 계속해서 찾아서 보았다. 심지어 대학도 다시 가서 논문을 쓰고 학위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의 독서와 영화시청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옛말에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책과 영화를 통해 진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에 대한 결론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진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라는 구도자에 있어 책과 영화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렇다면 왜 막다른 골목이었을까?


영화와 책의 본질에 그 이유가 있다.


영화는 영상이고 영상은 사진의 순차적 배열이다. 1초에 평균 24장의 사진들이 순차적으로 나열된다.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사진은 보이는 순간을 화면에 담아낸 것이다. 즉, 그 순간에 대한 표상이다. 그렇다. 표상. 즉 실체가 아닌 실체에 대한 한 단면일 뿐이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캡처하지만, 캡처한 순간 진리는 사라져 버린다.


책 또한 마찬가지다. 책은 글로 만들어진 것이고 글의 본질 또한 하나의 표상이다. 글로 내가 지금 "하나님"이라고 쓸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이 아니다. 단순히 글자일 뿐이고 우리가 그 글자에 단순히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진리에 대한 영상과 글을 만들어낸더라도, 그곳에는 영원히 진리를 담아낼 수 없다.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글과 영상은 매우 소중하다. 왜냐하면 이 두 매체가 진리를 직접적으로 체험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진리에 대한 실마리는 충분히 수도 없이 주었기 때문이다.


진리는 우리의 언어를 초월한 지점에 있다. 우리가 언어와 영상으로 표현한 순간 진리는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그 세계는 사진과 글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며 기록하고 포착할 수 없는 세계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클리셰적일수도 있는 그곳.


바로 지금 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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