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쓰지 말라고~
작가가 되겠다는데 쓰지 말라니....
이창동교수님 수업시간마다 들었던 이 이상한 말에 나도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쓰지 말라시면서 써온 것에 피드백을 해주실 때마다
쓰지 말라는 말이 마치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다' 수준의 주술 같았다.
이창동교수님은 지금은 학교에 계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교수님께서 학교를 그만두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학생으로서는 너무 아쉬웠지만
감독으로서는 그 결정이 존경스러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립대학이다. 그런 대학의 교수자리를 내어놓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기를 결정하신 그 결정이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이창동교수님처럼 당연히 존경스러운 분들도 계시지만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신다. 이름을 대자고 치면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정말 영화를 사랑하고 그래서 영화만 생각해서 그분께 들었던 이야기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분들 말이다.
그런 분 중에 한 분이 드라마글쓰기 수업을 해주신 故이은영작가님이시다.
나에게는 선배님이기도 하신 교수님은 매시간 일본 드라마 <성자의 행진>을 한부씩 줄거리 정리를 숙제로 내주셨다. 그러면 그걸 우리는 프린트로 제출했고 다음 주면 하나하나 밑줄을 긋고 코멘트를 써서 돌려주셨다.
서른이 넘어 다니는 학교였는데도 good!이라는 표시를 보면 그렇게도 신이 났다.
한 자 한 자 얼마나 성의껏 읽고 써주셨던지, 나는 지금도 그 페이퍼를 가지고 있다.
교수님은 사실 <바람의 화원>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지고 계신상태였다. 물론 공백기라는 게 결과적인 것일 뿐 쓰기를 멈춘 적은 없으셨다. 그런 교수님이 안쓰럽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으며, 어쩌면 졸업 후 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을 보면서 내가 교수님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때 그때 교수님께 그 지독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정말로 졸업 후 절망적일 때마다 교수님을 떠올리며 '지금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마치 단 한 장의 카드를 날려버리게 될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그럼 마음이 좋더라. 기댈 곳이 있다, 나는 찾아갈 사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교수님은 모르고 계셨지만....
그걸 알려드렸다면 달라졌을까?
나 같은 후배가 교수님을, 선배님을 존경하고 애정하며 의지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어느 날 아침 드라마작가 A 씨에 관한 기사를 보는데 불현듯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정보도 없이 그저 드라마작가라는 말뿐이었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그 카드가 사라져 버린 걸 알았다.
나는 지금도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면 교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기도 하고 한편 나는 버텨내리라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 곁을 지나간 학생들이, 후배들이 나를 찾고 싶어지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이은영교수님처럼 좋은 교수님은 아니니 그저 버티고라도 있어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