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질문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의뢰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것들은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수락할 지 말지를 결정한다.
첫 번째는 의뢰해 준 일을 상상했을 때 선명하게 그려지면 수락하지 않는다.
이미 내가 해왔던 것의 반복일 뿐이라면 의미가 없다.
수억 준다면 모르겠지만 수억 주지도 않기 때문에 다행히 결정은 쉽다.
두 번째 의뢰는 질문, 1 줄 쓰기, 4 줄 쓰기의 도식에 꽂힌 의뢰이다.
출간을 준비할 때도 염려스러웠던 이 도식을 넣기로 결정했던 건,
어렵지 않다고, 그러니 어서 쓰기 시작하라는 응원이고 격려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간간히 이 도식 자체에 깊이 몰두한 학생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
그럼 가차 없이 나는 이 책은 당신에게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슬프다.
꼬박 2년을 붙들고 있어 만든 이 책을 스스로 쓰레기라고 불러야 하는 내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작가에게 질문은 이런 것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지극히 고유한 것이다.
그런 것이 이런 도식에 빈칸을 채워 넣는다고 튀어나오지 않는다.
다만 머릿속에서 어수한 질문을 마치 책꽂이 정리하듯 덜어낼 때 그때 빌려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건 책꽂이 같은 도식이 아니다.
머릿속을 가득 매운 어수선한 질문의 파편들이다.
빈책장을 사다 두고 그때부터 방을 어지르는 사람은 없다.
어질러진 방을 보고 깊은 한숨을 쉬었을 때 그제야 빈 책장을 떠올린다.
질문이 먼저다. 그게 없으면 빈 책꽂이는 차라리 그저 비워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