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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하는 이모씨 Jul 08. 2023

w-log 모두 숫자가 문제다.

중딩 큰 딸은

열심히 하던 공부도 시험점수가 나온 순간 열심을 의심받는다.

그동안 보낸 시간이 이런 식으로 어떤 위치라고 팍! 정해진다.

아니야... 점수보다 중요한 건 내가 보낸 시간이지.

열심히 하면서 그동안 나 스스로 멋지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잖아.

열심히 한 내가 이 정도면 다른 애들 점수는 더 난리 났을 거야.


최선을 다해 멘탈을 보살피고 있는데

거기에 등수가 나오면 쉽지 않다.

누가 봐도 맨날 놀던 애가 나보다 등수가 높다고?

이렇게 되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시간이 이 세상에서 순위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숫자만 남는다.



이사님 남편은  

출근 시간 1분이 뭐라고

8시 59분에 출근카드를 찍으면 짜릿하지만

9시 1분에 출근카드를 찍으면 쩌릿하다.

아니야... 이 시간보다 중요한 건 오는 길에 한번 올려다본 하늘이지.

걸어오면서 참 좋은 아침이라고 생각했잖아.

2분 빨리 온 다른 사람들은 저 하늘을 못 봤을 거야.


최선을 다해 멘탈을 보살피고 있는데

거기에 인사고과가 나오면 쉽지 않다.

누가 봐도 회사에서 맨날 컴퓨터만 하던 애가 나보다 인사고과가 높다고?

이렇게 되면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연봉이 이 세상에서 순위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숫자만 남는다.



영화감독 엄마는

만들 때만 해도 그렇게 살갑던 주연배우가 관객수가 나오자 쌩하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마치 평생의 영화동지가 된 듯 굴다가도 박스오피스가 나오면 단톡방에서 나가버린다.

아니야... 다음 작품 때문에 바빠서 그럴 거야.

관객수는 기대이하지만 여전히 이 영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스텝들과 배우들이 있잖아

나에게 관객이 남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남는 거지.


최선을 다해 멘탈을 보살피고 있는데

거기에 손익분기점을 따지면 쉽지않다.

누가 봐도 이상한 저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이렇게 되면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관객수는 이 세상에서 순위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숫자만 남는다.



초딩 우리 둘째

단원평가를 망쳤단다.

아주 당당하기 이를 대가 없다.

당당함이 어이없어 웃으면 다른 애들은 더 못 봤을 거라고 다독인다.

아니.... 못 봤다고도 아니고 못 봤을 거라는 거는 뭐야?

다른 애들 점수 모르는데?

자기 점수에도 관심이 없는데 다른 애들 점수까지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지.


최선을 다해 보살필 멘탈은 없다.

거기에 기말 성적표가 나오면 더 쉬워진다.

등수나 점수대신에 '도달' '미도달'로 나오는 성적표에서

'미도달'로 나오는 게 훨씬 어렵다.

이렇게 되면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도 뭐도 아니다.

나의 성취는 그런가 보다 한다.

그때가 되면 나의 노력은 역시 짱이다. 그냥 글자만 남는다.


생각해 보면 모두 숫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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