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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하는 이모씨 Jul 02. 2023

w-log 공황장애를 들켰다.

며칠 전 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다.

업무 차 동행이 있었고 아침 비행기로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날 비가 예보되어 있어 하루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을 좀 했지만 다행히 쾌청에 가까운 날씨라 비행기가 뜨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제주에 도착해서도 나쁘지 않았다.

일행과 나는 역시 기상예보는 믿을게 못 된다며 가져 온 우산을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비가 왔다.

대단한 비는 아니었다.

밀어 넣은 우산을 다시 꺼냈다.

그런데 계산을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비가 똑 그쳤다.  

그리고 택시를 탔는데 다시 비가 왔다.


그날 하루 종일 이랬다.

우리가 내려서 일을 볼 때는 비가 안 오고 회의를 하고 있거나 택시로 이동 중이거나 식사를 하는 중에는 어김없이 비가 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한번도 우산을 꺼내지 않았다.

렌터카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면서도 우산은 가방 속에만 있었다.


일행과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놨다.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가 있을까요?"

계획했던 모든 일을 모두 무사히 마쳤고

식성도 비슷해 속도 편안했고

비 한 방울 안 맞으며 조마조마하거나 지루할 틈 없이 편안히 출장을 마치다니.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탔다.

일행과는 나는 탈 때와는 달리 따로 앉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보다는 어쩔 수 없는 침묵이 반가웠다.

좀 자야겠다 싶어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편안하니 피곤하지도 않구나 생각했다.  


그때였다.

비행기가 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라는 수준을 넘어서자 난기류로 인해 기체가 흔들린다는 방송이 나왔고 기내쇼핑을 돕던 승무원들이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이 보였다.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며 금방 끝나지 않을 꺼라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기류는 계속되었다.

10분? 20분? 일주일쯤 지난 지금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만큼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숨어 있던, 이제는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공황에 빠져 들었다.

온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눈에는 눈물 한 방울이 맺혀 떨어지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채 같이 굳어 있었다.

그 와중에 천국에 가고 싶다는 절박함을 느껴서일까,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평생을 외워 온 주기도문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이별, 남편에게 하고 싶은 당부, 부모님께 전해야 할 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오고 가느라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떨리는 손으로 비행기모드인 핸드폰에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갔다.

이렇게 사고가 난다면 이 핸드폰이 우리 가족들 손에 닿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뭐 그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이럴 때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하는 거 다 거짓말이구나. 그게 피상이구나.

진짜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구나.

한참을 흔들리던 비행기가 잠잠해졌다. 여기가 바닷속 어딘가 싶을 만큼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메세지는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 모두 지워버려서 뭐라고 썼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비행기가 멈추고 사람들이 순서대로 내렸다.

내 차례가 되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나보다 뒤쪽에 앉았던 일행이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몇 번을 흔들며 앞서 나갔다.

그제야 나도 일어났다. 그리고 내 몸이 비행기체를 빠져나가자마자 나는 정말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이렇게 소리 내어 엉엉 울다니 지금도 뭐라 설명이 안된다.

나중에 일행이 말하길 어린 아이가 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한참을 울고 나니 뒤늦게 정신이 들었고 그 한 맺힌 울음소리의 주범이 나라는 걸 발견한 일행이 곁에 있었다.

나는 가족이 데리러 왔다는 일행을 얼른 보냈다.

내가 괜찮다고 했겠지 싶다.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혼자가 된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일행에게 나의 상태를 들킨 것이 창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이 아닌 날 괜찮냐는 질문을 받아야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면 괜찮지도 않은데 괜찮다고 해야하고

어쩌다 이러는건지 설명을 기다리는 눈을 모른척 해야 하는 모든 상황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싫었다.

이 사람의 선택으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될수 있다는 무방비한 지경이 벌써 버거웠다.

그리고

아직은 안 괜찮구나... 싶어 조금 서글펐다.



그렇다.

나는 공황이 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을 거다.

그걸 설명하려면 그때 시간들로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건 그냥 최약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어려웠던 때 은사님께 경사가 있어 제자들이 모인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이미 감독이 된 사람들과 될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은사님의 지인들이라 친한 사람도 있었지만 안면만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이렇게 둘러앉은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그저 반가웠고 별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기분 좋은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다가 우연히 어떤 감독이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탑스타와 영화를 찍었고 호평도 받아 잘 된 영화의 감독이다. 그러자 다른 감독이 자신도 그렇다고 말했다. 잘 된 작품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선배였다.

그러자 한 둘이 더 커밍아웃을 했다.

공황을 고백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감독이 된 사람들이었고 될 사람들은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비겁해서 인지, 용기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나는 선배들의 고백을 들으며 나쁘게도 참 좋았다.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안타까워하고 위로를 해줘야 했지만 솔직히 나는 좋았다.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나만 이상한 거 아니구나. 이런 시간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내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내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공황이 시작된 이후에 가장 큰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

그때 그 김포공항에서도 나는 선배들을 생각했다.

그 선배들도 그렇겠지. 나만 이런 거 아닐 거야. 선배들도 난기류를 싫어할 거야.


기가 막히게 운수 좋은 그날,

지옥의 땅바닥을 찍고 온 그 날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몸에 힘이 들어갔던지 며칠을 교통사고 난 사람처럼 앓았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엉엉 우는 아줌마의 추접스러움이 누군가에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선배들에게 위로를 건네지 못하고 나쁘게도 좋기만 했던 그 미안함을 이렇게 갚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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