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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하는 이모씨 May 27. 2023

내 말이 똥이 되도록 만든 이들에게

나는 좋은 조언자일까?

나는 본의 아니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 학생들, 지인들, 혹은 지인의 지인들을 많이 만나왔다. 

대부분 영화를 하고 싶거나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고 싶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큰 아이 초2 때 담임선생님 딸까지 만났으니 정말 지인의 지인까지 많이도 만났고 어쭙잖은 조언을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영화는 너무 힘드니 관두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건 넘의 인생이니 내 알 바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이미 나는 그 힘들다는 걸 하고 있고, 하고 있는 내가 그리 구겨져 있지 않으면서 상대에게는 힘드니 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허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허세쩌는섞인 조언을 많이 들어봤고 짜증만 났었다. 

그러니 나름 가장 객관적으로 장담점을 설명하려고 하고 내가 파악한 상대의 장점을 활용해 가는 길을 같이 고민해 주려고 애를 써왔다. 

그럼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됐을까?

모두 영화과 진학에 성공해 영화일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동안 조언을 구했던 사람 중에 진짜 영화를 한다는 소문을 듣거나 만나거나 입학에 성공했다고 전해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이럴 때의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1. 영화과진학에 실패하고 영화일을 하지 않는다. 

2. 영화과진학에 성공해 영화일하지만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두 가지는 굉장히 다른 건 같지만 내 입장에서는 같은 고민을 하게 한다. 


'내가 좋은 조언자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일에든 진학에든 실패했다면 내가 좋은 조언자가 아니었을 것이고

성공했다면 나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연락을 안했을 것이다. 

1의 경우에도 2의 경우에도 답은 '나는 좋은 조언자는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걸 인식하고 한동안 이런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을 피해왔다. 

시간만 낭비하고 자존감마저 깎아먹는데 기운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대학원 시절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코로나핑계로 못 뵌 지 언 3년 만에 일이다.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아 바로 외쳤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웃으시면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전화를 잘못 걸렀어요~"

나와 동명의 지인이 있다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단박에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냐며 선생님과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요즘에 고민하는 지점을 툭 털어 넣고 말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마치 내가 이미 이걸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이 당신이 생각하시는 대안들을 쭈욱 풀어주셨다. 나라면 잘 해낼 수 있다는 칭찬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시는 것까지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뭐지... 싶었다. 

갑자기, 그것도 잘못 전화를 하셔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고?

내가 너무 진지하게 들었는지, 선생님이 갑자기 전화로 헛소리를 늘어놓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은 참소리인가, 헛소리인가?

이제 나는 전화를 끊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선생님말씀을 잊어 버린다면 잘못걸린 전화한통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한다면?

그럼 이건 내 삶의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될수도 있다.


뭐가 다를까?

이건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다르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느냐 아니냐가 선생님의 말씀을 잘못 걸려와 쏟아낸 헛소리로 만들 수도 있고 하늘의 운명이 나에게 전화를 하도록 이끌어 진리를 전해주신 기적의 참소리일 수도 있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쏟아낸 수많은 조언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입에서 나간 그것은 상대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더라. 

그것이 참소리일지 헛소리일지 나는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선생님이 쏟아 내신 말씀들도 같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도 참소리로도 헛소리도 만들 수 없다. 그 문은 나만 닫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참소리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만약 이 글을 당신이 읽고 있다면 선생님의 말씀은 참소리로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좀 더 건강히 실패하며 좀 더 즐겁게 영화하기 위해 내가 선생님의 조언을 실행하고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좀 미친 소리 같지만 그러니 선생님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같은 의미로 나에게 조언을 받고 영화일을 안 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사과해라.(><!)

내 말을 똥으로 만들었잖아~!!!!



P.S  나쁜 말을 한 인간들의 나빴던 말은 헛소리로 만들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구겨져 있으면 안 된다. 안 그럼 그 인간의 말이 참소리가 된다. 

헛소리가 되도록 절대 구겨지면 안 된다. 더 잘 먹고 잘 자고 신이 나서 헛소리꾼으로 만들어주자. 


photo by 영화하는 이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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