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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하는 이모씨 Jun 13. 2023

w-log 셰익스피어만 기억하는 드런 세상

감사인사를 받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엄마 셰익스피어가 원래 말을 지키는 사람이었데요"

우리 둘째는 진짜 아는 게 많다. 그것들이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기는 해도 진짜 별의별 걸 다 안다. 

그런데 오늘 아침밥을 먹다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해줬다. 


"말을 지키다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을 했고 그러다 배우도 하고 극도 쓰게 되었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이제부터 영화하는 엄마가 출동할 차례다. 


"어느 날 셰익스피어가 극단장의 말을 지키고 있었을 거야. 오늘따라 말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아 극단장은 신경이 쓰였지.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말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극단장에게 잘 설명했어.

마구간의 오은영선생님처럼. ㅋㅋ

흡족한 극단장이 말도 안 통하는 말들의 맘을 읽어낸 것을 신기하게 여겨 어젯밤 공연은 어떻더냐고 물어. 

안 그래도 요즘 손님이 줄어 극단장은 뭐가 문제인지 고민이 많았거든.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주연배우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가능성 있는 조단역배우들을 언급하지. 극단장은 어차피 손님도 없는 공연이니 과감하게 셰익스피어 말대로 배우를 교체하고 뜨거운 반응을 얻게 돼. 그때부터 이제 셰익스피어는 마구간대신에 극장으로 출입을 하며 본격적인 캐스팅디렉터가 되는 거야. 그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직접 설명을 하겠지. 거의 반은 감독의 역할을 했을 거야. 그런데 못 알아들어. 답답해. 그러니까 어떻게 하겠어? 내가 할게! 이렇게 됐겠지?

그런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 연기가 이상해. 상대의 태도에 이렇게 반응하는 연기를 하라고? 납득이 안되니 연기가 이상했을 거야. 극단장은 그런 셰익스피어에게 화가 나서 그를 호출해. 

"당신의 연기는 엉망이야!?" 

극단장에 호통에 셰익스피어는 화가 났고 이건 나와 배우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 극의 문제라고욧! 하고 대들었어. 

극단장은 그럼 어쩌라는 거야? 하니 셰익스피어가 외친 거야! "제가 써보겠습니다!!!!"


둘째 아이는 

"셰익스피어 대단해요!"라고 외쳤다. 

"극단장이 대단하지!"라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이 모두 셰익스피어만 이야기하지만 사실 진짜 대단한 건 그 셰익스피어를 알아본 극단장이다. 

실제로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게다가 자신의 재산을 걸어가며 기회를 주는 모험을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극단장이 없었다면 셰익스피어는 없을 수도 있었다. 

영국은 극단장덕에 셰익스피어를 얻었다. 그 사실을 영국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와 둘째 아이는 오늘 하루 한국의 두 사람이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극단장을 기억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내가 이렇게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사람에게 꽂힌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감독한 영화에 어떤 조단역 배우가 나온다. 

그분은 지방에 작은 연기학원에 다니다가 데뷔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당연히 밥벌이도 안될듯하니 알바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을 담당하는 연출부(인물조감독)에게 지방으로 가서 연기학원을 뒤져보라고 출장을 보냈고 그때 그 배우를 찾아왔다.

그렇게 그 배우는 우리 영화에 출연했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우리 영화를 촬영하며 A배우(지금은 명실공히 탑스타가 되셨다)를 만나 둘이 친해졌던 모양이다. A 배우는 다른 영화에 가서 같은 사투리가 필요한 배우를 찾는 감독님에게 이 배우를 추천했다. 

그리고 우리 영화에서도 그랬듯 이 작품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결국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는 조연배우가 되었다. 


그 배우 인터뷰 기사가 한참 쏟아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배우가 A배우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아마 A배우 아니었으면 배우는 포기했을 거라고 감사인사를 하더라.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그 배우를 알아본건 인물조감독 친구다. 

지금도 여러 작품에 투입되며 이름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물조감독의 선구안이 없었다면 그 배우는 A배우를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러니 감사인사는 우리 인물조감독 몫이어야 한다. 


그런데 참 슬프게도 그 배우가 이해가 간다. 

인물조감독에게 감사하다고 인터뷰를 했으면 아마 포털 메인홈에 인터뷰가 걸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배우의 꽃길에는 인물조감독이 아니라 A배우가 서있는 것이 본인을 위해 좋은 일일수 있다. 


나는 그분을 비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어쩌면 감사인사를 받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질문을 받은 것 같아서 이다. 

우리 인물조감독이 지금 유명한 감독이 되었다면?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작이든, 대단한 영화제의 수상을 했다면 A배우 대신 우리 인물조감독이 인사를 받을 수 있었을까?

이상한 말이지만 그럼 그건 인물조감독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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