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할 때면 사실 항상 긴장이 된다.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무섭다.
요즘 애들은~ 뭐 이런 이유가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는데 당연한 거다.
최소한 학생들은 나를 검색도 할 거고, 내 강의계획서도 보고, 들어말어를 고민하다 들어오겠지만 나는 정말 이름하나 달랑 알 뿐, 내가 원한다고 가르치고 말고를 결정할 수도 없다.
정말 세상 이런 '을'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아무도 모르는 다짐을 한다.
'면담은 없어.'
'피드백은 두 번 이상은 절대 안 해.'
'개별 지도는 꿈도 꾸지 마.'
나는 정말이지 이 다짐을 매 학기 개강 때마다 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이 다짐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연기를 한다는 것.
이것은 열심히 학습해서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성장을 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내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약하고 후지고 초라하다.
이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면 수업에 불성실하면 되고 그 대가로 그 학생은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열심이고 싶은 학생들은 기꺼이 자신을 내어 던진다.
부끄럽고 쑥스러운 건 기본이고 비난과 조롱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그들의 글을, 그들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것은 정말 숭고하다.
분명히 존경스럽고 애틋하며 때론 그쯤 해두라고 도닥이고 싶다.
종강을 했다.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톡과 메일을 받았다.
이 학교에 들어와서 제일 좋은 수업이었다고, 현실적인 수업이었다고, 감사했단다.
문득 내가 뭐라고 했더라... 복기했다.
돌아보니 사실 별건 아니다.
자꾸 뻔한 글을 쓰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학생이 있다.
당연한 과정이니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진짜 한심한 짓만 안 하면 된다고 했다.
타 영화과를 졸업하고 다시 영화과 학부생이 된 학생은 여전히 엉망인 자신의 글을 보니 지난 시간 동안 뭐했는지 부끄럽다는 학생도 있다.
이제 막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동생들과 절대 같을 수 없다고, 스스로가 스스로의 시간들을 가치 있게 여겨야 다른 사람들도 그 시간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했다.
학부수업인데도 굳이 청강을 하겠다고 찾아온 대학원학생이 수업에 들어와 집중을 못하고 과제도 내지 않있다.
나는 그 학생이 결석을 하고 다음 주에 왔길래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안 써질 때, 영화가 좀 지겨울 때 즐거이 쉬어갈 줄 알다니 훌륭하다고 했다. 그 학생은 혼날 줄 알았다면서 상했던 마음을 토해내며 펑펑 울었다.
학생들은 좋은 선생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는 약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천번씩 학생들과 같은 생각을 한다.
수천번씩 내 글이 부끄럽고 한심하고 지난 시간을 헛으로 보낸 것 같아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그러니 내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뭔가를 대단히 깨달은 현자라서가 아니다.
모두 내가 듣고 싶어 나에게 매일 수천번을 해주는 말일 뿐이다.
돌아보면 다소 무심한 선생님들이 있다.
무신경한 가족들,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나쁜 게 아니다. 그저 강할 뿐이다.
약하지 않아 약한 너의 생채기가 눈에 안 들어올 뿐이다.
우리는 약한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아봐 주어야 한다.
약하니 좋은 게 이거다. 좋은 사람으로 이리 얻어걸린다.
약해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