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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하는 이모씨 Aug 25. 2023

7 또는 다시 1. 마무리하며

준비하던 영화의 제작이 무산되었다. 

제작사를 만나는 것도 투자사를 만나는 것도 한 계단 한 계단 정말 어렵게 올라섰는데 그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되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던 나로 고스란히 돌아와 있더라. 

길고 지독한 꿈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원래 이 직업이 이런 거라고 씨게 배웠다고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쪽으로 결론을 내든 결국 나는 빈손이고 네이버 프로필은 텅 비어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허송세월인지, 쉬는 시간인지도 모르는 멍청한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을 때

이 작품의 제작이 본격화될 무렵 그만뒀던 강단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은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전화도 못 드리고 문자로 고사를 했다. 그 미운 짓을 두어 번 더 했다. 

못난 제자이자 자랑할 것 없는 감독에게 은사님은 매 학기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셨다. 

할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은사님 말씀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은 핑계였는지 명분이었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요즘은 강사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사를 하기 위해서는 지원서를 내야 하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옛날처럼 본인은 별생각 없는데 하도 하라고 해서 한다는 모양새는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나도 학교로 돌아갈 결심과 함께 지원서를 작성했다. 

자소서형태의 강의계획서를 작성하는데

첫 문장에 이렇게 적었다. 


"강의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절박해 보일까 싶은 저 문장을 적어놓고 자존심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은사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지원하는 모양이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게 이 일은 정말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니 오롯이 내가 책임지고 정말 좋은 교수가 되리라 다짐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처음 강의를 할 때는 그동안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일인 줄 알았다. 

감독이 됐다는 오만함도 있었을 거고 그러니 내가 다~ 가르쳐줄게 라는 허세도 있었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강단은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매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이더라.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고민하고 작업해 왔는지 나의 시간을 만나는 시간이다. 

네이버 프로필도, 우리 부모님도, 가족도 모르는, 나만 아는 나의 시간들을 매 시간 만난다. 

그리고 학생들의 눈빛은 그 시간이 그리 한심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결국 나를 살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내 강의를 녹음하는 학생 때문에 언짢았던 마음을 책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바꾸는데 이르렀다. 


여기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 과정은 사실 좀 급작스러웠다. 

초반에 밝혔듯 갑자기 3년 만에 전화가 온 소설가 교수님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난데없이 전화를 하셔서 브런치에 글을 써보라는 그 전화통화가 너무 이상했고 그 이상한 통화를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65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처음 계획한 목차를 순서대로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 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보다 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이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시는 몇 분 덕에 처음 계획대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을 갚을 길이 없다. 


앞서 스토리를 쓴다는 것도 같다고 말했듯이 여기까지 와보니 부끄럽고 형편없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와봐야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라이킷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응원에 즐거웠던 것은 정말로 사실이다.

여기까지 등 떠밀어주신 분들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좋은 영화 들고 댁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으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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