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5일 일기
호스피스와 다르게 여기서는 보호자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었다.
“과한 진통제로 섬망이 심해진 것 같으니, 용량을 조절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진통제 용량을 줄여보니, 엄마는 이전처럼 공격적인 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과 눈을 다문 채 허공에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복수가 차서 불편한 지 계속해서 앉고 싶어 했다. 엄마는 마치 오뚝이 인형과도 같았다.
침대에 등이 닿으면 오뚝이처럼 일으켜달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몸을 뒤집고, 팔을 내밀고, 엄마라는 단어를 종종 내뱉었다.
간호사는 불편해 보여도 엄마에게는 덜 고통스러운 편안한 자세일 것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등을 붙였다가 앉아있기를 반복한 엄마는, 다음날 엉덩이에 커다란 욕창이 생겼다.
욕창을 방지하려고 붙여둔 폼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발적이 일어나고, 엉덩이 뼈 가장 중심부는 보랏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절망스러웠다. 그 이후로는 엄마를 앉힐 수 없었다.
엉덩이 욕창을 피하려 오른쪽, 왼쪽 돌아가며 눕혔다.
그 사이에 엄마를 힘들게 했던 복수천자관은 제거했다. 노란 고름들이 생겨 짓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복수 천자관을 빼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굉장히 속 시원해했을 텐데 아쉽다.
이틀 동안은 제거부위로 복수가 계속 흘러나와 낮았던 혈압이 더 낮아졌다.
그래서 도파민이라는 승압제가 추가되어 24시간 동안 들어간다.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를 모니터링하는 기계도 부착되었다.
엄마의 입에서 음식물찌꺼기들이 노랗게 변해 딱 달라붙어 악취가 나기 시작했을 때 산 송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산 송장, 살아 있으나 활동력이 전혀 없고 감각이 무디어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
이런 엄마의 곁에서는 밥을 먹는 것도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전히 병실 안에서는 웃을 일이 전혀 없다.
가족들이 엄마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왔지만, 간병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해가 지고 뜰 때까지 밖에서 일을 해도 모자란 농번기라서 나에게만 엄마의 간병이 맡겨지는 것은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면회를 오더라도, 첫째 오빠는 남 보듯이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고,
새벽부터 땀 흘리며 농사일을 하신 아빠는 충혈된 눈으로 엄마의 손을 감싸다가 한숨을 내뱉고, 머리를 베개에 맞대자마자 코를 곯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