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일기
혼자 간병을 하다보니,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화장실을 참아야할 때도 있었고, 땀으로 축축해졌음에도 샤워를 못하는 날도 있다.
낮에 눈을 붙이다가도 가족과 친척들의 안부인사에 대답해야하고,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지인들의 면회에 감사함을 표현해야하고,
의사와 간호사의 방문에 대응해야한다.
엄마를 하루에도 수차례 자세를 바꿔드리면서 손가락 관절이 붓고, 손목관절이 아파온다.
한번 욕창이 심하게 생기니, 밤에도 2시간마다 알람을 맞추어 일어나 자세를 바꾸어주었다.
수면제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불안하지 않도록 손을 잡고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여주기도 했다.
다행히 어느 하루는 엄마가 좋아하는 둘째 아들이 서울에서부터 내려왔고, 나의 남자친구도 함께했다.
점점 의식보다 무의식이 강한 엄마를 혼자서 들기 벅찼었는데, 참 고마운 일이었다.
밤에도 2시간마다 일어나 자세를 바꿔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남자친구와 둘이서 번갈아가며 잠을 자는 시간을 확보하니 훨씬 피로가 덜했다.
남자친구는 4박 5일을 엄마 곁에서 머물다갔다.
평소에 남자친구와 내가 데이트할 때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엄마를 깔깔 웃게 했었고,
나보다 남자친구를 더 아낄 정도로 예뻐했었다.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춤을 추고, 방구 냄새 하나에도 크게 웃었다.
커다란 지지대 같던 사람이 떠나자마자 겪어본 적 없는 공허함이 다가오긴 했다.
나는 왜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가족의 짐을 혼자서 짊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원망스러웠다.
휴직을 한달 만 더 일찍했더라면,
엄마가 암 진단을 받자마자 사직했더라면,
본가와 가까운 곳에 직장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곧장 이겨냈다.
원망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당장 나를 도와줄 사람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간병할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
이 시간동안 엄마는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키웠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 같다.
가족들이 아무리 무너져 내려도 나는 가족들을 토닥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치, 엄마가 우리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몸이 덜 피곤하고, 마음이 덜 아픈 내가 손을 건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엄마가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내리 울어왔기 때문에
지금은 가족들보다 조금 더 빨리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조금 더 의연해졌을 뿐이겠지만.
엄마가 한번은, 나에게 “엄마는 강해. 나는 임연자고, 너는 임연자 딸이야. 외쳐봐, 나는 연자 딸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럴 때 외치라고 말씀해 주셨나보다.
그동안 쏟아냈던 울음과
그동안 쓸어내린 가슴이
나를 감싸 안고 있던 엄마 대신에 한 겹, 한 겹 쌓아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암 치병을 도우면서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은 커져만 갔는데,
사실 엄마가 나의 단단함을 키우기 위하여 내주는 단계별 임무였던 것 같다.
지금껏 씩씩하게 임무를 해내왔으니, 홀로 간병을 하는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멀리보아 앞으로 삶의 어떤 시련을 만나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엄마가 말하는 것 같다.
임무에 대한 보상으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단단함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