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by 단심

2024년 6월 26일 일기

장례가 마치 축제 같았다고 하면 누군가 욕할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온 건지 눈으로 증명하는 자리였다.


2일째 되던 날, 저녁 식사시간에 사람들이 앉을자리가 부족해서

옆 장례식장을 추가로 빌려서 자리를 만들었고 조카 20명이서 음식을 날라도 손이 모라 잤다.

음식이 부족해서 계속해서 추가하고, 장례식장 매니저님은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온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고 했다.


동시에, 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우리 삼 남매는 수많은 사람들과 절을 나눴다.

나는 이리저리 일처리를 하고 다녔지만, 온전히 엄마 옆을 지켰던 오빠들은 다리가 부서질 것 같이 쑤시다고 했다. 게다가, 24시간 피우는 향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워 눈이 시려서 혼났다.

밤이 되면 쓰라린 눈을 한참을 부여잡고 있었다.

밤에는 조금 쉴 줄 알았는데, 엄마 옆자리를 비울 수도 없으며

밤에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이 꽤나 있어서 장례식장이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상주 휴게실조차 다른 친지들이 들어가 코를 골고 있었다.

처음으로 박카스와 얼음, 사이다를 섞은 '얼박사'를 먹으며 3일을 버텨냈다.


염을 하는 과정은 차마 엄마를 보기 힘들었다.

엄마가 꽁꽁 싸매지는 모습을 보고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또한,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예쁘고 소중한데,

관 속에 들어가는 엄마는 퉁퉁 부어서 못 알아볼 정도였기에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염을 하는 과정에서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엄마를 모시고, 화장을 하러 가기 전에 집에 들렀다.

엄마는 결국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집은 엄마의 흔적이 하나도 없이 새하얀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고 집을 한 바퀴 도는 내내, 새로운 집에 발도 디뎌보지 못한 엄마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많이 났다.


화장을 하고, 국립추모공원에 안치를 마치고서야 장례가 끝이 났다.

축제와 같았던 장례식이 끝나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제까진 축제장이었던 곳이 무인도로 변하는 것 같다.

이제야 오롯이 슬픔과 공허함과 허탈함이 온 힘을 다해서 나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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