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마친 후

by 단심

장례를 마친 후, 아버지는 한순간에 혼자가 되었다.

엄마가 섬망이 찾아와 정신을 놓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도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엄마가 아파서 집에 누워있을 때조차 본인의 슬픔을 가누지 못해 술과 함께 버텼다.


엄마가 한낱 가루로 변하고서야 아버지는 죽음을 받아들인 듯했다.

'병원에 누워있을 때는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낫겠다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았고, 일도 하지 않았고, 또 술과 함께 버텼다.


나는 애석하게도 장례식장에서 회사로부터 돌봄 휴직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었다.

"돌봄 대상자가 사망하셨으니, 사망 전날까지 돌봄 휴직이 적용됩니다. 사망한 날로부터 조가 5일이 발생하고, 2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교대 근무를 하는 환경에서는 휴가 내기가 어렵다.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고, 우울증에 가까운 아버지를 놓고 올라가기에 마음도 불편한데

장례를 마치고 온 집에는 현실이 놓여있었다.


시댁 식구들이 아버지가 힘들어하니 엄마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준 것이다.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습관을 가진 엄마가 남겨둔 음식들이 마당 전체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시댁 식구들도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다. 고마웠다.


하지만, 절에 입고 갈 검은색 옷을 찾으러 안방에 들어갔는데 여자의 옷이라 생각되는 모든 것을 없어버린 상태였다. 휴직하는 동안 머물렀던 나의 흔적마저도.


화가 많이 났다. 분명,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했는데

엄마 옷 정도는 내가 치우게 남겨두어야 하지 않냐고, 내 옷도 버리면 어떡하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장례를 치르는 3일간 엄마가 남겨둔 묵은 음식과 짐들을 치우느라 고생한 시댁식구들은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손가락질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짐을 싸서 당장 떠나셨다.

나보고 그럼 이제 얼굴보지 말고 살자는 거냐고 소리 지르는 분도 있었다.

국가에서도 애도 기간을 5일 주는데 왜 아버지에게 엄마의 흔적을 당장 지워야 하는가.

엄마의 흔적이 사라지면, 아버지는 슬프지 아니한가?

장례를 치르는 3일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데, 왜 장례식을 마치면 애도가 끝나있어야 하는가.


그들은 커다란 쓰레기 더미를 남겨두었다.

그 쓰레기 더미에는 옷들이 마구잡이로 싸여 있고, 오래된 가족사진들이 나뒹굴고 있고,

엄마와 아빠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물건들이 처박혀있었다.


아버지는 쓰레기 더미 속에 굴러다니는 가족사진을 줍고, 추억이 담긴 가방을 꺼내 꼭 안으셨다. 연자가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죽은 건가.라는 말을 조용히 읊조리며 또 울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흔적을 보고 살아갈 힘이 없을 까봐 배려해 준 것인데, 분명 우리 가족에겐 더 큰 상처를 주었다. 나는 2주간 남은 휴가를 집을 정리하는 데 썼다.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그들이 그대로 나 두고 떠난 남은 집을 치워야 했다. 동시에 울기만 하는 아버지를 돌봐야 했고, 오빠가 아빠의 몫까지 농사일에 전념했다.


결국, 사망 신고, 보험 및 재산 처리, 병원 최종 정산, 엄마가 도맡고 있던 아버지의 경제활동 전부를 정리하는 것도 내 몫이 되었다.


세상에는 아버지가 "벌써 젊은 여자랑 손을 잡고 시내를 돌아다닌다. 벌써부터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각박한 세상이다.

동시에 그 젊은 여자인 나는 과로로 토를 하며 쓰러졌다. 응급차를 타고 실려가 수액을 맞고서야 살아났다.

집의 기둥이 사라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앞으로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버지를 혼자 두고 어떻게 서울에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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