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 반지가 다시 금빛을 낼 즈음

by 단심

엄마 잘 있어?

곧 엄마의 기일이라 그런지, 보고 싶다면서 나에게 전화 오는 사람이 많네.

안 그래도 엄마의 유품인 백금 반지가 자연스러운 금빛이 돌기 시작했어.


이 백금 반지 말이야,

행운을 가져오는 백금이라면서 엄마가 늘 하고 다녔던 거 기억나지. 내가 자주 탐냈었는데.

엄마가 떠나고 나서 내 손가락에 맞춰서 사이즈를 다시 맞췄어.


작년 여름에 금은방에 맡길 때, 속상한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의 반지 색감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서 사이즈만 줄여달라고 했어.

그런데 사이즈를 줄이면서 새하얗게 빛나는 백색으로 나에게 돌아온 거야.


마치 엄마의 흔적은 전부 지워버린 새 반지 같아서 속상했어.

이제 엄마의 손길을 완전하게 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었거든.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든 모습들이 점점 더 잊히고 닳아지고 있구나.

꺼내볼 때마다 더 편향되어 있겠구나.

이별을 미워할 시간이 없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다짐했지.


마치 폭삭 속았수다에서 '손톱 끝의 봉숭아 물이 사라질 때면 엄마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대사가 생각나.


새하얗게 빛나던 은빛 반지가 이제 오묘한 금빛을 품어내기 시작하니까,

이제 엄마는 보고 싶어서 서럽게 하는 존재라기보다


매일 잠에 들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는 모든 순간에 내 머릿속에 맴도는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었어.


생리통이 심해서 새벽에 끙끙거리며 깨버린 어느 날에는

엄마는 무슨 고통들을 안고 살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 천국에도 전화가 있으면 물어볼 텐데.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평생 엄마로서 짊어온 고통과 암 투병했던 고통들이 떠올라.


그래도 엄마는 '폭삭 속았수다'의 오애순이 처럼,

"나는 좋아서 했어. 나는 나대로 기똥차게 산 거야. 내 인생 좀 깐히 보지 마."라고 하겠지?


문득 엄마가 해줬던, 이 이야기가 증명해 주는 것 같기도 해.

"다시 결혼하다면, 지금 남편과 또다시 결혼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는 질문에

엄마는 한순간도 고민 안 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었잖아.

100명 중에 손을 든 사람은 엄마 혼자였다고.


이제 다다음 달이면 엄마 첫제사야. 엄마가 좋아하는 수박도 커다란 거 올려줄 게!

요즘은 자주 꿈에 나와서 내 편도 들어주고, 함께 놀러 가줘서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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