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Sep 13. 2022

내가 교사를 선택한 이유

내 직업은 특수교사다.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20여 년 전에는

"특수교사는 뭐예요?"

라는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특수교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아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직업을 듣고 나면

"대단한 일 하시네요."

"정말 선하고 착하시네요."

등의 반응을 보이는 데 솔직히 불편하다.

이 말 자체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고

특수교사도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 마치 선함, 희생, 봉사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해준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제자들이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교사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아버지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포항제철에 입사하셔서 어머니와 함께 포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셨다.

포항제철의 생산직이셨으니 맞교대, 삼 교대를 하시면서 정신없이 일만 하셨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기 전, 자고 난 후에 집에 오시는 분이셨다.

몇 년 동안 일와 학업을 병행하시더니 결국 생산직에서 사무직으로 이직을 하셨다.

사무직을 하시면서 스펙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으시려고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셨다.

교대근무가 없는 사무직임에도 아버지는 해뜨기 전에 출근하시고 깜깜한 밤에 돌아오셨다.

평일날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은 거하게 취해 퇴근하실 때였다.

 자고 있는 나에게

"아들~"하며 내 양 볼을 매만지시는 아버지의 거친 손의 촉감 깜짝 놀라 일어났던 적이 기억난다.

주말에는 마치 산 송장처럼 잠에 취해 계신 아버지의 등을 보는 게 다였다.


그때는 아버지가 계셔도 안 계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정(情)'에 내가 목말랐던 것 같다.


낮밤 없이 일만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모든 회사원들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정해진 근무시간에만 일을 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내 시간을 보장받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내 시간을 보장받는 직업,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직업, 한 여자의 남편이자 자식의 아비로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 직업.

어린 내가 찾은 직업은 교사였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이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 직업이 교사를 선택한 큰 이유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교사로 지내면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커 가는 매 순간순간을 함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직장에서는 첫 해부터 체육부장을 시작으로 연구부장, 교무부장으로 부장교사라는 직함을 달고 일에 파묻혀 살았다.

아이들 깨기 전에 출근하고 야근을 밤 먹듯이 하면서 퇴근하면 아이들이 자는 모습만 보았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놀자는 손길을 '아빠, 피곤해.'라며 거절하고 잠에 취해 있었다.


'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지금 내 모습은 내가 그렇게 서운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직장이 먼저가 아니라 가족이 먼저다.

내가 직장에서 얻고자 했던 내 욕망을 버려야 한다.

수없이 다짐을 해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직장... 일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것 같았다.


지금은 직장 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게 아깝지 않아?', '선생님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해야지.'

라며 나를 붙잡았다.


직장에서 나를 대체할 사람은 넘치지만 내 가족의 남편이자 아빠는 나밖에 없다.


 이 단순한 명제를 이해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아버지의 첫 직장. 포항제철 1고로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날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