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아빠 따라쟁이다.
항상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아내와 단 둘이 이야기할 때도 곁을 떠나지 않고 무슨 말이 오가는지 확인한다.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가정 살림, 주머니 사정이라든지 아이들 교육 문제라든지
또는 두 딸의 험담(?)도 할 때가 있는데 둘째가 달라붙어서 눈치가 보인다.
"해령아, 엄마, 아빠 이야기해야 하니까 안방에서 텔레비전 보고 있어."
라고 말해도
"싫어, 옆에 있을 거야!"
하고 아내 옆에 찰떡처럼 붙어 있는다.
간신히 아이를 안방으로 보내도 문에 귀를 대고 '무슨 말을 하나?'하고 염탐을 한다.
첫째도 둘째처럼 아내와 나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만 둘째처럼 집요(?) 하지는 않다.
특히, 내가 평소 하는 모습이나 말투에 대해서는 첫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둘째는 하나하나가 관심이자 관찰 대상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참 그림에 빠져 1일 1 그림을 할 때가 있었다.
하얀 스케치북에 하나하나 선을 입혀가며 드로잉에 열중하고 있으면
어느새 자기도 스케치북과 태블릿 PC를 가지고 내 옆으로 온다. 다람쥐 캐릭터를 검색한 태블릿 PC를 보여주며
"아빠, 여기 있는 다람쥐 그릴 수 있어요?"
라고 물어본다. 둘째의 우러러보는 눈빛 속 '아빠는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암묵적 압박감에
"그럼~ 그릴 수 있지!"
라며 비슷하게 따라 그려 준다. 그러면 둘째는 색연필을 갖고 색칠에 푹 빠진다.
강아지, 고양이, 공주님 등등 여러 캐릭터를 그려주면 둘째는 채색하기를 수십 번을 거치고 나니
"아빠, 이번엔 토끼 그려 주세요. 그 대신 연필로 그려주세요. 제가 따라서 선을 그리고 색칠할게요."
라고 말한다.
"그래! 아빠가 연필로 희미하게 그려주면 네가 펜으로 스케치를 해봐."
하고 밑그림을 그려주니 피그먼트 라이너로 선을 입히더니 채색까지 완성한다.
지금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자기가 직접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해서
"아빠~ 이거 어때요?"
라고 보여준다.
처음에는 내가 그린 그림에 색칠만 하더니 이제는 자기가 직접 따라 그리는데 제법 똑같이 그린다.
요즘은 가족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글로 써내려다가 보니
둘째도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지 어느 날,
"아빠, 제가 지금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한 번 봐주세요."
라며 자기 핸드폰을 나에게 들이 민다.
핸드폰 속에는 '라라의 세계 여행'의 제목으로 핑크색 주인공이 그려져 있고
라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차원의 문을 통과해서 피라미드가 있는 사막으로 떨어졌다.
거기에서는 이름 모를 검은 악당이 라라를 뒤쫓고 있고 라라는 악당의 불의에 맞서 싸우기 직전까지가 적혀 있었다.
"우와~ 해령이가 이야기를 만들었네. '라라'가 어떻게 될까?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둘째에게 다음 이야기를 물어보았더니, 코 끝을 찡긋 거리며
"흠.. 비밀이에요. 이야기가 완성되면 알려줄게요!'
라며 스포 방지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여보! 똑바로 살아야 해! 해령이는 당신 하는 대로 따라 하잖아."
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러게... 둘째는 내가 하는 모습을 그대로 복사해서 따라 한다.
순간 얼굴을 붉게 타올랐다.
한창 매일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면서 꾸벅꾸벅 졸던 나,
OTT 속 드라마와 예능을 주야장천 보면서 혼자 키득키득했던 나,
물건을 정리하지 않고 쓰레기는 그냥 아무 데나 방치했던 나,
기타 등등 얼굴 붉힌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와~ 내가 이렇게 엉망으로 살았구나.'
엉망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말 아비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창피할 따름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 말이 진리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된다.
"똑바로 살자! 김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