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아~ 오늘 공부 안 해?" "할 거예요~" "도대체 언제? 그러다가 또 잘 거지?" "30분 있다가 할 거예요~" "맨날 30분 있다가 그러다가 또 안 하잖아." "엄마는 맨날 공부하라고만 해!" "네가 공부를 얼마나 한다고 그래. 문제집 두 세장도 안 풀고 1시간도 안 하잖아?" "아니거든요!" "내년이면 중학교 가는데 매일 정해 놓은 거는 미루고 하루에 2시간은 진득이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너무 많단 말이야." "그게 뭐 많아! 여보! 당신이 뭐라고 좀 해봐요." 나는 머적이 뒤를 돌아본다. 혹시 내 뒤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다시 현실을 직시한다. '왜 항상 마지막에 나를 부르지? 뭐라고 대답하지?'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맨날 나만 안달이야." 아내의 말에 급하게 답한다. "아... 일단 좀 기다려 줘 볼까? 아니면 하루에 할 양을 좀 합의 보고 조정하는 건?" "이게 뭐가 많다고 그래요?" 앗... 낭패다. 조용히 정리를 해보려 했는데 안 되는 상황이다. 아이가 생각하는 공부의 양과 부모가 생각하는 공부의 양이 일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집도 우리 집과 같지 않을까? '어머~ 우리 아이는 내가 그렇게 공부를 그만하라고 해도 해서 문제예요.' 라고 말하는 집이 있다면... 당장 쫓아가서 그 집 아이에게 상담을 신청하고 싶을 정도다.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루에 책을 여러 권 읽고, 문제집을 여러 장 풀고, 공부를 몇 시간 이상하는 양적인 기준이 과연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왠지 21세기의 우리 딸들의 공부 습관과 성실성을 몇 장, 몇 시간 등으로 평가하는 건 20세의 학생이었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부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슬로 리딩'보다는 도서관에서는 독서통장을 줘서 많은 책들을 기입하고 순위를 매겨 상을 준다. '창의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면서 하나의 문제를 오랫동안 고찰하는 기회보다는 문제집 속 나열된 문제를 얼마나 많이 빨리 푸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택과 집중, 몰입'이라는 가치를 중시하지만 아이가 책상에 지긋이 오랫동안 앉아 있는 모습에 부모는 안심하여 아이가 성실하고 꾸준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아무리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자주 바뀌어도 우리 아이들의 공부는 우리 아이들 시절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부모인 우리가 학생 시절에 했던 공부 형태가 우리가 겪은 게 다이니, 결국 그 시절 모범생의 모습을 우리 딸들에게 바라는 건 아닐까? 우리도 학생일 때 잔소리를 들으며 엉덩이에 땀띠가 날정도로 앉아 있고 겹겹이 쌓인 문제집을 빠른 속도로 풀면서 '대학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라는 어른들의 희망 고문 속에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등을 사치라 여기며 지냈었다.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다만 그 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놓쳤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 어른들한테 속았어!' 라고 했지만 결국 부모인 우리도 자식들에게 우리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두 딸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대신 공부해주는 게 나은가? 아니다! 아마 우리 딸들이 이렇게 말할 거다. "아빠! 왜 오늘 해야 할 것 반도 안 했어요! 책은 3권 읽었어요? 도대체 집에 와서 뭐 하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