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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Nov 13. 2022

조치원 문화정원(구 조치원정수장)

가을의 하늘은 설렘과 헛헛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높이 솟은 하늘은 언제든 떠나고픈 마음을, 코 끝이 찡한 바람의 내음은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스케치북과 펜, 읽다만 책을 가방 속에 주섬주섬 구겨 넣고 조치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레고 마을처럼 사람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효율성을 극대화한 세종시 아파트 천국을 지나

버스는 세종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한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주변에는 누렇게 펼쳐진 논과 터줏대감인 고목이 인사를 합니다.

중간중간에 구멍 난 도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덜크덩'거리고 내 몸도 따라 '삐그덕'됩니다.

불과 5분 전 매끈한 도로와는 달리 불편한 시골길이지만 정겹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전해져 오기 때문이겠지요.


버스는 2차선 도로를 달려 조치원역에 도착했습니다. 정류장에서 내려 조치원정수장을 향해 걷습니다.

현재 조치원정수장은 그 역할을 다하고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 조치원 문화정원으로 꾸며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치원정수장 건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한 카페가 흔히 'SNS 맛집'이지만 지나칩니다.

많은 이들의 리뷰와 의견을 보다 보면 제가 그 공간의 첫인상은 이미 지나간 그들로 인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주변의 건물, 나무, 꽃, 사람들을 충분히 조망한 뒤에 나만의 느낌을 갖고 들어가려고 나중으로 둡니다.


건너편에 파란 물탱크가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물탱크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구도를 잡아 본 뒤 제일 마음에 드는 구도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연필로 전체적인 윤곽을 빠르게 잡은 뒤 펜으로 천천히 긴 호흡을 두고 하나씩 그려 나갑니다.

'어반 스케치'는 간단히 빠르게 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대상을 깊고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기에 그리는 시간보다 바라보고 사색하는 시간을 더 둡니다.

한참 그림을 그리는데 등 뒤가 따갑습니다.

5~6분의 할머니께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런데 눈빛은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 이는 이 평일날 아침에 왜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지?', '실업자인가?', '집에서 쫓겨났나?'

이런 느낌을 받았지만 굳이 제 인생사를 말할 필요가 없기에 그림에 더 열중합니다. 하나 귀는 할머니들 쪽을 향해 있습니다.

음악을 껐지만 이어폰은 낀 채로 할머니들의 말을 엿듣습니다.


"우리 아들은 말이야, 그 초등학교 때부터 책만 읽더니 이제 서울에서 의사하고 있잖아."

"맞아, 의사 양반이지? 우리 딸도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애가 안 들어서서 애먹이더니 벌써 유치원 다니고 있으니..."

"그.. 그 옆 집 있잖아? 그 집 아들은 그렇게 잘 나간다고 하더니만 몇 년 전에 죽어버렸잖아."

"에고... 그때 그 이 생각하면... 잘 나가는 거 다 필요 없어. 자식들이 건강히 잘 크는 게 좋은겨."


이미 출가하고 자식의 자식까지 있는 중년의 자식들이지만 노모에게는 여전히 눈가에 내놓은 아이들인가 봅니다.

저희 어머니도 항상 '밥 잘 챙겨 먹어라. 잠 좀 많이 자라.' 하시니 부모들은 다 똑같나 봅니다.

70세 이상이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의 인생 주제가 '자식들'이니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가 아닌 '자식', '남편', '며느리'로만 살아온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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