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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31. 2022

내 어린 2층 집

부여 규암마을

1980~9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규암마을로 향했습니다.

레트로 열풍으로 작은 시골 마을은 젊은 외지인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지개를 켰습니다. 이제는 한 시간만 차를 타도 온 몸이 답답하다고 아우성을 치네요.

몸 구석구석 세포가 깨어있음을 느끼며 무심코 앞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담한 2층 집이 보입니다. 1층은 시멘트 빛깔이 2층은 옅은 레몬빛이 가을 하늘빛에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30~40년은 되어 보이는 전형적인 옛날 2층 가옥입니다.



'응답하라 1988'이 생각났습니다. 당연히 '정환'이네 집 때문이지요.

눈앞에 있는 집과 '정환'이 집이 오마주 되었지만 저는 셋방 살이 하는 '덕선'이가 생각났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칸방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정환'이네 집처럼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의 구석에 문을 달고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딸린 집이었죠.

화장실은 밖에 있어서 여름에는 모기에게 헌혈하고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덕분에 변비는 없었지요.

어머니는 기름을 넣은 곤로에 밥이며 국이며 맛난 음식을 매일 만드셨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진수성찬이 만드셨다는 게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작은 빨간색 흑백텔레비전도 생각납니다. 높은 장 위에 텔레비전이 놓여 있어서 항상 고개를 높게 쳐들고 봤습니다.

 그렇게 단칸방의 추억은 5층짜리 임대아파트로, 빌라로, 아파트로 삶의 공간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부모님께서는 서울의 자가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저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임대아파트, 전세 아파트 살이를 거쳐 자가 아파트를 마련했습니다.


이제야 부모님께서 도움 없이 맨 손으로 일구어내신 삶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릴 때는 '가난', '부족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지원을 해 주셨기 때문이죠.

없는 살림에 한 푼 두 푼 모으셔서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신 거죠. 마치 덕선이 엄마가 화장품 샘플을 쥐어 짜내듯 탈탈 털어 쓰듯이 본인들을 위해서는 단 돈 100원도 아까워하셨듯이요.

제가 부모가 되고 맛난 음식이 있으면 자식들 먼저 먹이고 나에게 쓰는 돈은 아까우면서 자식들에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저를 보면서 마음이 애리면서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큰돈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따박따박 돈이 나오고

그 돈을 아껴 두 딸이 하고 싶은 피아노, 요가도 가르치고 딸들이 싫어하지만 영어 학원도 보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외식도 하고 삼겹살이며 연어며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습니다.

1~2년 돈을 모아 배낭여행도 다닙니다.

벌 같은 부자는 아니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정도는 되니

이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인생 혹시 또 모르지 않겠습니까?

'덕선'이네 처럼 판교 같은 곳에 마당 딸린 2층 집을 지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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