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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중동의 더위를 이기는 방법

시리아 다마스쿠스

by 소정

중동여행을 해 보신 적이 있는가? 그것도 여름의 중동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 8월 30대인 나는 시리아에 있었다(본의 아니게 나이가 밝혀졌다). ’중동? 덥겠지.‘, ’우리나라보다는 많이 덥지 않겠어?”, ‘사막같을 거니 40도 정도 되나?’ 이런 답변들을 하실거라 예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나라와는 결이 다른 더위이다. 처음 겪어보는 이 여름이 낯설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온다습한 날씨로 습식사우나같다. 땀이 데워져서 끈적끈적한 느낌과 습도 때문에 헉헉거린다. 시리아의 여름은 40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습기가 적어 건식사우나에서 사는 것 같다.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고, 뒤꿈치는 가문 땅처럼 쩍쩍 갈라지다 못해 속살이 보인다.
‘풋케어를 가져올 걸. 적어도 바디로션이라도 챙겨올 걸.’
이제와서 후회하면 뭐하나. 다음에는 꼭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도 없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한 복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았다. 더위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열대야가 무색할 정도로 낮이든 밤이든 체감하는 뜨거움은 비슷했다. 잠을 청할 수가 없어 매일 뒤척거리기를 반복했다. 푹꺼진 매트리스는 내 땀인지 먼저 머문 이들의 땀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의 체취가 뒤엉켰다. ‘꿉꿉’, ‘뻐근’, ‘찝찝’함의 콜라보가 펼쳐지는 밤이다. 새벽 5시가 되니 주변이 조금씩 밝아져 왔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안녕’하며 레이저를 쏜다. 햇살이 들어오는 곳은 금새 뜨거워진다. 방 안이 마치 양은 냄비같다. 햇살을 피해 바닥 구석에 누워본다.
‘그림자를 찾아야 해. 어둠을 찾아야 해!’
방구석을 헤매는 내가 드라큘라 같다. 태양에 백기를 들었다. 7시가 되기도 전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아침형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Bab Sharqi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무더위로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는 문화다. 도로에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그들이 뿜어내는 연기가 자욱하다. 검정 체크무늬 터번으로 코와 입을 막아본다. 곳곳의 노상에서 뜨거운 커피와 차를 마시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
“이열치열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다. 미지근한 생수만 벌컥거린다. 그늘을 찾아 Hamidiyah souq(다마스쿠스의 대표적인 전통시장)로 향한다. 10분여를 걷다보니 한 손에는 활처럼 휜 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말고삐를 잡은 호기로운 동상이 보였다. 중동의 영웅 살라딘 동상(Salah Al Din Statue)이었다. 금방이라도 적진을 향하여 달릴 듯한 역동감이 느껴졌다. 십자군을 무찌른 살라딘은 아랍인들에게는 영웅이고 유럽인들에게는 치욕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생각났다. 수크(Souq: 전통시장, bazaar라고도 함) 입구에 도착했다. 온 몸에 땀이 잔뜩이지만 괜찮다. 수크 안의 그늘과 바람이 더위를 날려줄터니... 우리나라의 오일장은 개방형이지만 시리아의 전통시장은 천장으로 하늘을 덮고 개미굴처럼 작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을 막아주고 맞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피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아랍인들의 지혜를 배운다.

이곳에 온 이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다쉬 아이스크림(Bakdash Icecream)이 있기 때문이다. 1895년에 문을 연 박다쉬 아이스크림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자 다마스쿠스의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가게 안에는 항시 사람들로 붐빈다. 분주한 점원을 피해 빈자리를 찾아 자리부터 잡는다. 지나가는 점원의 옷소매를 잡는다. 손가락 2개를 펴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세 개를 시킨다. 금새 아이스크림이 내 눈 앞에 있다. 50년은 되어 보이는 엔티크한 도자기 안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견과류가 가득하다. 숟가락으로 견과류와 아이스크림을 잘 뭉쳐 입 안에 넣는다. '찌리링~' 귓가에는 천국의 종소리가 들린다. 찐득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입안에 가득하다. 살포시 견과류를 씹어 아이스크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면 달콤함 고소함이 환상이다.
“우와~ ‘맛있다’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소문을 내지?”
아... 정말 말로든 글로든 묘사하기 힘든 맛이다. 직접 와서 먹어봐야 공감할 수 있을 맛이다.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는 내가 매일 최소 한 두 번 이상 먹었으니 100% 보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맛! 달콤과 향긋의 정석!

Bakdash Icecream

아! 복분자 슬러시도 빼놓을 수 없다. 숙소에서 Hamidiyah souq로 향하는 길에는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올려놓은 손수레가 있었다. 얼음덩이리는 분홍빛과 자줏빛을 띄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복분자 원액을 얼려놓은 것이지요. 주인장에게 손가락을 펴서 하나가 달라고 하면 대표로 얼음을 사정없이 갈아 맥주컵만한 유리잔에 담아준다. 티스푼으로 떠 입에 넣는 순간 진한 복분자의 향이 퍼진다. 시원하고 건강한 맛이다. 불량식품이 아닌 과즙 100퍼센트의 착즙 주스같은 맛이다. 한 그릇 뚝딱하면 여름철 보약을 먹은 것처럼 온 몸에 힘이 솟는다.


처음 겪어 보는 중동의 땡볕 더위 속에서 박다쉬아이스크림과 복분자 슬러시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아마 이 둘을 만나지 못했다면 시리아 여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시리아를 떠올리면 달달한 바닐라 향과 새콤달콤한 복분자의 향이 코끝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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