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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l 23. 2022

난 더 이상 인사동을 가지 않는다.

나에게는 서울 하면 종로다.

서울 한가운데에 있어서 모임을 하기도 편하고

탑골공원 근처에는 몇 천 원이면 든든한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국밥집도 있다.

청계천을 따라 걷는 산책도 좋고 조금만 벗어나면 명동이 있어 쇼핑하기에도 편리하다. 거기서 조금 더 힘을 내면 남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종로 하면 인사동이고 인사동 하면 피맛골이다.

피맛골의 좁은 골목 곳곳에 오래된 식당들이 즐비해 있고

수 십 년 된 주막들이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다.


피맛골 하면 시위, 집회도 빠질 수 없다.

70, 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종로 일대에서 집회를 하고

뿌연 최루탄을 피해 피맛골 골목으로 들어와 칼칼한 코와 목을 막걸리 한 잔으로 씻어내고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던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밤새 난상토론을 했을 것이다.

90년대 이후에도 성숙한 민주화와 대학 족벌재단 타도, 장애인, 새터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집회 시위가 한창이었고

그때도 집회를 마친 후 인사동 피맛골에 모여 술 한잔에 서로의 아픔을 위로했었다.

00학번인 나도 장애인 인권과 교육 차별 철퇴,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족벌 재단 타도 등 집회 시위가 있었으니

21세기에도 여전히 종로는 다양한 계층, 집단의 소리 내는 창구였던 것 같다.

 


수십 년 사연을 가진 피맛골이다 보니

오래된 주막을 가면 주막 벽에 쓰인 낙서가 여느 곳과는 다르다.

'이대로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일어나자!'같은 낙서부터

'00, 00 우리 우정 변치 말자', '미래의 유망주 000 왔다감'까지 다양한 사연이

벽에 빼곡히 박혀 있다.


주막의 대표 시그니처인 고갈비(구운 고등어)와 양푼에 담긴 막걸리를 주문해서

막걸리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고갈비 한 점을 굵은소금에 찍어 먹는다.

막걸리의 구수함과 고갈비의 짭조름함을 느끼며 벽에 쓰인 낙서를 구석구석 읽다 보면

막걸리는 이미 동이 나 있다.


이렇게 막걸리를 추가로 시키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시절이니  현 정부, 정책, 사회 등이 이야깃거리이지만

전공이 특수교육이다 보니 결국 장애인 인권, 교육, 연대 등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만 많았던 20대이지만 그때만큼 다들 노력만 하면 상식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겐 인사동은

내 청춘의 기쁨, 고뇌, 변화 등 무수한 감정들이 함축된 공간이었다.


몇 년 전 종로서적에 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인사동을 들렸다.

삶의 터전이 지방이다 보니 졸업 후 인사동을 10여 년 만에 가본 것 같았다.


옛 추억을 되살려 골목골목을 살펴 걸어가는 데

그 공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고풍적인 느낌의 한옥 식당이나 편집샵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참 걷다 보니 한 구석에 피맛골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골목에 술집과 식당 몇몇이 보이고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나는 내 청춘을 잃어버린 듯한 허망감을 느꼈다.

인사동과 피맛골이 이렇게 된 이유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란다.

낡고 지저분하면 그냥 다 밀어버리고 새롭게 짓는 게 도시재생사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월을 오래 품고 있으니 낡을 것이고 지저분해 보일 뿐이지

그 속에 담긴 수 십 년의 세월의 역사는 지금도 반짝거리는데 말이다.


허망함을 느낀 그 이후로 나는 인사동에서 발길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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