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집

30년 동안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

by discoverer

건축가가 되려는 꿈을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중학교 3학년 때, 한 건축가가 TV에서 강연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라고 말한다. 건축이라는 용어를 인지하게 된 시점은 그때부터지만 아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내고 지금도 집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아빠가 지은 그 집에서의 경험에서부터 공간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연히 태어나서부터 서른 살이 넘을 때까지 살았던 집을 꼭 닮은 공간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등나무로 만든 수족관, 목재사이딩으로 마감된 벽, 몰딩으로 장식된 방 문, 황동색 손잡이. 예전 집의 모습과 너무 비슷했다. 사진의 그 장면을 따라 나머지 공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집 안의 곳곳에 추억들이 가득해서 여러 해에 걸쳐 바뀌어 온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바로 기억나지 않아 시절을 되짚으며 단서를 모아야 했다. 로드뷰로 보니 외벽의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긴 했지만 외관도, 이름도, 1층의 상가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예전 집을 기억해 내느라 잠을 미뤘고, 더 잊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선 3대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동생.

방이 세 개여서 어릴 적 동생과 2층 침대가 있는 작은방을 같이 썼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대학교에 갈 때까지는 혼자 썼고, 학교에 입학해 학기가 시작할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그 후로는 안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잤다.


초등학교 때였나, 학년이 새로 시작하면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 인적사항을 적어내야 했다.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 취미와 특기, 부모님의 직업, 내가 바라는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 그리고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주택인지 빌라인지 아파트인지. 예전 집은 상가 주택이었는데 그때 나에게 주택은 단독주택의 개념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느 유형을 적어야 하는지 매번 고민하면서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디 사냐'는 가벼운 질문에도 설명이 길었다.


그런 이유 말고도 몇 가지 이유로 어린 시절 집에 불만이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엔 집에 아무도 없으면 열쇠 없이는 현관문을 열 수 없어서 (가족은 6명인데 열쇠는 왜 2개뿐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차가운 계단에 앉아 가족 중 누군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고, 그 시간을 참 싫어했다.

겨울이면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 추웠던 화장실, 아빠의 유년시절부터 함께 해 온 골동품 같은 가구와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들. 집 안 대부분의 물건마다 십수 년이 넘는 역사가 있었지만 내 눈에는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아빠는 고쳐 쓰는 걸 좋아했고 엄마는 꽃 같은 것들로 무마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아지트 같은 내 공간이 필요했지만 그러기엔 동생과 내 짐이 섞여 있는 작은방은 너무 좁았다. 오롯한 내 공간을 만들어보겠다고 옥탑의 방치된 창고에 짐들을 정리하고 페인트 칠을 해 작업실로 꾸미기도 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목재 상판을 잘라 테이블도 만들고 학교에서 만든 모형들도 가져다 두며 정을 붙이려고 애썼다. 봄, 가을엔 얼추 쓸만했지만 여름과 겨울엔 엄두가 안 날만큼 덥고 추워서 점차 그 공간에 대한 애정도 식어갔고 결국 내 짐으로 가득한 창고가 되었다. 성인이 되면서는 하나 둘 마음에 드는 가구들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집에 대해 저마다 애정하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나의 욕망만 덧붙여질 뿐, 잡지에 나오는 집들처럼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집에서 30년의 시간을 거의 꽉 채울 무렵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켜켜이 쌓인 짐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물건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가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 집에서 30년을 살았다고 하면 대부분이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내가 살 집을 직접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집을 오래 지켜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과 의지를 요구하는 일인지 알게 되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기고 슬프고 행복하고 따뜻했던 일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라 몇 일째 추억 중이다. 이사하면서 버리거나 팔았던 낡은 물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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