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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ectum Sep 23. 2023

나의 기록의 동기는 언제나 비겁하다.

삶에 발맞추지 못할 때에만 찾는 기록의 장

-

마지막으로 글을 쓴 지 1년이 좀 안되게 지난 듯하다.

많은 시간과 작은 일들이 몇 가지, 내 삶을 관통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전과 비슷한 일을 다시 시작했고,

의문을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러던 동안

현실과 함께 연주하는 음악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듣지 못하고 있던 그 소음들이.


-

전공, 학위 그리고 그동안 해오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직종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마냥 쉬운 건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시간과 주의를 쏟아부으면 해낼 수 있었다.

그걸로 된 거라 생각했다.

일은 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회사는 나의 직급을 주임으로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주임에서 대리로,

그리고 그다음 단계까지 역량을 성장하기를 바랐다.

'일은 그저 일일뿐이다.'라는 문장은 통하지 않았다.'

이제 일과 삶을 동일시하여 더욱 정진하라는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장에 발전이 더해지기 위해서는

적성과 노력의 방향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주한 현재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적성, 흥미에 관계없이 노력만으로 밀어낼 수 있는 한계점에 이제는 다다랐다.'

상사에게 면담을 요구받고 경고를 받는 시간이 생겼다.

부서 이동을 요구하였지만 이 또한 좌절되었다.

'적성'은 너무 흔한 말이었지만 이 단어가 받아들여지는 자리는 너무 희귀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위협받고 있다.

현실과 나의 시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실존적인 위협.

행복감과 수많은 유희들에 사는 방향을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도 잠은 잘 수 있었고 월급은 나왔었으니까.

그 대가를 나는 일시불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겁하게 번뜩 떠올린다.


'아, 글을 써야겠다. 기록해야겠다. 기록하지 않아서 놓치는 게 이렇게 많았었다니.'


-

이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비겁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다가

중간에 멈추고 마는,

돼지까지 도망가서야

울타리를 세우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고야 마는

나 자신은 한심하다.


-

삶의 궤적은 언제나 나 자신을 배신한다.

적어도 내가 삶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적어야 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지금 이 순간하고 있다면 더더욱 필요하다.


되돌아보면

기록이야말로 나 자신을 하기 싫은 일들을 해나가게 하고

적성과 흥미 자체를 성취감으로 치환시키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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