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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 Mar 30. 2022

혐오하는 자를 혐오할 권리

오늘 근무중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지난 과거에 그냥 사는게 행복하고 즐거울 때 연락하라고 

내가 경고아닌 경고를 했던 적이 있던 친구다.


이번에도 그는 두서 없는 감정배설을 시전했다.

그 친구는 아마 내가 본인의 분노에 공감해주고

자기를 기분나쁘게한 그 인간에 대해 

자기 편이 되어 함께 비난하고 욕해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나와의 대화창에다가 그 인간에 대한 욕설을 배설한것일거다.


하지만 친구라는 개념은 내게 그저 가까운 타인.

내가 그에게 그렇게 해줄 의리나 의무는 없다.

친구라는게 그런 용도로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보다 높은 권력에 있는 사람에 대한 불만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이 날선 욕설들이 실제로 그 친구의 입밖으로 나왔을리는 없겠지.


하하, 엿먹이는 사람 따로있고, 욕들어주는 사람 따로있고 그런건가?

아무튼, 기억에 남는건 뜬금없이 내게 연락해 감정배설을 하는 

그 친구의 손끝에서 [XX도 못한 OO이 ...] 로 시작하는 감탄스런 표현.


아니, 굳이 비꼬아서 말할 필요는 없겠다.

이른바, "혐오발언"이 나왔다는게 

유감이라면 유감이다. 


나는 잠깐 멈추어 생각을 해봐야했다.

현재 이 친구가 내가 모르는 맥락으로 누적된 

특정 대상을 향한 증오& 분노로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시야와 이성을 잠시잃어서 

자기가 싫다고 명시한 그 상대와 동급이거나

그 이하수준의 인격이 되길 자처하는 폭언을 해버린건지

아니면, 애초에 XX을 못한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 친구의 기본적인 관점과 인식이 [XX 못함 = OO] 이라고 

생각하는건지 확실히 잘 모르겠다는 의문이 피어난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자이든 후자이든 

내게 있어서 그의 배설이 즐거운 공감과 이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불쾌한 인내의 영역이라 느껴졌다는건 확실한 사실이다. 


전부터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나 결이

그 친구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했었고 

결과적으로 내 입장에선 앞으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XX도 못한 OO]는 일단 여러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1. XX의 유무는 사람의 격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는가? 

2. XX을 못하면 OO인걸까?

3. OO들은 다 XX을 못하는걸까? 

4. 그 친구 본인은 일단 XX를 100% 할 수 있는 인간인가?

5. 만약 본인이 XX를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쳐도 그걸로 본인과 같지 않은

     타인들을 OO라고 여기며 표현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뭐...이렇게 문제요소를 하나, 둘 생각해보자면 끝도없다는거다.


아무튼, 본인이 무언가를 혐오할 권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며 살고 싶다면 

혐오할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혐오할 나의 권리 또한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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