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 지인인 랜선브로 K형을 만나 함께 논 하루였다.
데이트(?) 코스중 하나로 더현대서울을 갔는데
거기서 스포츠웨어를 아이쇼핑 하다가
우연찮게 한눈에 너무 마음에 드는 져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바로 상품의 가격표를 확인해봤는데....
유감스럽게도 가격대가 ... 만만치않았다.
일단 이성을 챙기자는 심정으로 차분히 다시 진열대에 걸어놓고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무언가를 찾아보려
관심이 안가는 다른 옷들을 뒤적이며 눈길을 애써 돌려봤다.
하지만 한번 내 눈에 들어온 그 져지는 끝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순간의 강한 끌림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60만원 상당의 금액을 4개월 할부로 지불하고 그것을 구매했다.
요즘 유행하는 "내돈내산"이란 용어처럼, 본인이 가장 좋으면 된거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다소 과감한 결정을 한거같다는 K형의 코멘트가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일단 구매한것까지는 좋았는데...
엄마가 이 구매사실을 알게되면 분명 곱게 가만있지는 않을것임을 예감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는 어른이 되려면
아이처럼 선택하되, 어른처럼 책임을 지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자, 이제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할 시간이다.
물론~ 나는 바보가 아니다.
옷을 가방같은데 숨겨서 가져오거나,
누군가에게 일단 맡겨놓고
추후 선물의 형식으로 그 사람에게 받았다며
알리바이를 만들고 밀수입을 하는 형태로 옷을 받아내는
편리하고, 영리한 해결방법도 옵션에 얼마든지 넣을 수 있는거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나에게 그 방법은 비굴하고 멋이 없게 느껴졌고.
그래서 난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일단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K형과 다 놀고나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면서
나는 엄마에게 전화로 내 구매사실을 정면으로 통보했다.
그러자 내 예상대로 엄마는 적잖이 흥분하셨고 (나쁜 의미로)
화가 난 목소리로 잔소리 길어질거같으니까 일단 전화를 끊으라고 하셨다.
그렇다.
망할 이걸로 곱게 넘어가긴 이미 글른거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사 온 그 져지와 져지의 가격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 옷은 자신의 백화점 카드를 사용해 결제하면 몇%의 할인을 받을 수가 있고
몇달 후 시즌이 지나가면 몇십%의 할인을 받을 수가 있는 옷이라면서
그러므로 왜 내 소비가 잘못되었고, 왜 비효율적인가에 대해 이해시키는 설명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당장 그 매장에 다시 찾아가서 구매를 취소하라는 제안을 하셨고
내가 그것을 거부하자, 그럼 내일 엄마 본인이 그 옷을 직접 매장에 가지고가서
환불을 다~ 진행해줄테니, 져지를 결제한 카드만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다시 거부했다.
결과론적인 설명덕분에 내 구매가 비효율적이며 실패한 구매라는걸 알게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경제적 손해를 보는 것도, 책임을 지는 것도...
내가 한 행위에 대한 나의 몫이지, 엄마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난 엄마가 기름값, 시간, 에너지 낭비해가며
다시 그 가깝지 않은 백화점을 찾아가서
내가 한 잘못된 선택을 없던것으로 되돌려주려고
매장 직원에게 아쉬운 소리해가며 환불을 받아내는 꼴을 겪는걸 보기싫다.
그것도 "나 때문에 " 말이다.
난 그냥 내가 비효율적인 소비를 한 병신이 되는게 백번천번 낫다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고,
자식으로서 기분이 나쁜 일이다.
애당초 내가 내 돈을 가지고 내가 쓸 물건을 구매하는데
엄마한테 싹싹빌면서 허락을 구하고, 할인을 위해 매번 머리를 맞대야하는
절차를 왜 거쳐야 하는건지, 그 자체도 정말 수치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는 자신의 일이 요즘 힘들다는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돈을 번다는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며
나에게 그렇게 해서 스스로 벌은 돈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하셨다
이번 일로 실망시킨것도 죄송하고
나의 소비에서 엄마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다 큰 자식에게 이런 식의 강압적인 통제와 과잉조치를 해대며
자신의 박탈감을 해소하는건 절대로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의 말대꾸를 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고나서야
마침내 환불하는걸 포기하셨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했던 져지를 지켜내며
석연치 않은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까지해서 이기고 싶었던걸까?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원하는 소비를 하는 것과 가족과의 좋은 관계.
그 밸런스를 조율하는건 생각보다 힘든 일인듯하다.
지금도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더 완곡하고, 더 원만하고,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심난한 심경으로 방에서 자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일도 함께 놀 예정인 K형으로 부터 약속일정을 묻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나는 K형과 내가 방금 집에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K형과 통화로 나눴던대화의 끝에서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피어올라 빛났다.
잘못을 통해 배움을 얻고 성장할 권리.
자신의 배움을 소중한 사람에게 나눠줄 책임.
두 가지 모두 딱히 잘못된 일이 아님에도
서로 부딫힐 때가 있다는게 아이러니하고 야속하게 느껴진다는 것...
자.. .조금 뜬금없지만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자식의 어떤 실패와 작은 손해도 바라지 않는 내 엄마의 보호, 가르침보다
내 잘못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나만의 배움이 더 중요한 사람인것 같다.
그리고 내심...
아직 내가 틀렸다고 단정짓고 싶지않다.
그 져지, 지금봐도 그 가격에 걸맞게 멋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