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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 Aug 14. 2021

시시한 복수


언젠가의 짧은 대화에 대한 단상. 


지금도 안 힘들게 살고 있는건 아니지만

되돌아보면 진짜 힘든 시절이 있었다.


손에 쥔 경력도, 그럴듯한 스펙도 아무것도 없이 

취업시장에서 번번히 내쳐지는 경험을 겪고있던

20대 초반의 취준생시절. 


나는 도무지 되는게 아무것도 없던 모든 상황에

지쳐있었고, 악에 받쳐있었다. 


나도 모르게 취업보다 창업이 차라리 낫겠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었던 형과 나눴던 대화다. 






"또 탈락이라고? 유감이다. " 


"상관없어요. 저 취업 이제 안하려구요. 더러워서 내가 안해요. "


"그럼 어떻하려고? "


"취업 말고 창업하려구요. 환율 높은 나라로 나가서 돈모으고, 커피 배워서 카페 사장 할겁니다. 취업이고, 뭐고 결국엔 돈 때문에 하는거잖아요? 수단이야 어찌됐든 돈만 벌면 되는거아냐. 재수없는 남들 비위맞춰서 돈버느니 내가 기술 배워서, 내가 사장되면 그만이지. 취업.. 그 거지 같은거 안해도 충분히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증명해서 사람 깔보는 이 세상에 복수할거에요. 난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구요. "


"...하나만 묻자. 그래서 너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할텐데 그게 언제까지야? "


"네?"


"너가 죽을 때까지야? 아니면 너가 포기할 때까지야 ? "


"......"


"죽을 때까지 하게? " 


그말을 들은 순간 망가진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그건 내가 포기할 때 끝나는거죠."


"다행이야. 방금 내 질문에 너가 만약 '죽을 때까지' 라고 대답했으면 나는 너를 다시는 안보려고 했어. "


"좋은 얘기 고마워요. " 






결과적으로 그 이후 나는 내가 한 말대로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카페창업을 하려다가

제대로 발도 못담궈보고 내가 포기하는 순간에 그 계획을 접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이든다.


내게 상담을 해줬던 그 형이 했던말도 이제와 이해가 된다. 

지금와서 그 말이 왜 그렇게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나를 곱씹어보니

삶의 태도에 관해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했던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었던것 같다. 


다행이다.

그 때의 세상물정 모르던 

나의 소꿉놀이 같은 복수가 커지기 전에 시시하게 끝나서.

총성은 언제나 두번 씩 울리게 되어있는 법. 


비뚤어진 집념이라는건 종종 사람에게 큰 에너지를 줄 수 있지만

부메랑처럼 그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 집념을 통해 어떠한 결과를 얻더라도

나는 만족하는 대신 항상 쫒기는듯한 불안감에 시달렸을거고 

잘 안되면 자신의 선택과 그에 대한 대가를 합리화하기 위해

얼마든지 비겁해지고, 추악해졌을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내가 정말 망하던, 말던 죽을 때까지 그 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복수에 집착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내 영혼의 형태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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