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여행 속도를 찾아가다
드디어 1일 차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지우펀에서 맞은 비는 결국 얇은 반팔티 안에서 긴장하던 피부까지 닿았다. 그러나 내색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쳤을까 걱정했다. 내 눈에 담긴 아이들은 다행히 평소와 같았다. 딸은 억지로라도 보조개를 만들어가며 웃고 있었고, 아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평소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달랐다. 말없이 걷는 뒷모습에서 피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도 잠시 앉아 쉬었던 덕분일까. 끔찍했던 저녁 식사 이후로, 조금씩 기운이 돌아오는 듯 보였다.
아님 1일 차의 모든 일정이 끝나서 신나는 것일까? 이제 호텔로 가기에 신났던 것일까?
지우펀에서 타이베이 메인역으로 가는 길 중간에 라오허제 야시장에 내릴 계획이었으나 더 이상의 무리는 다음 일정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 미루기로 했다. 자유여행으로 온 이유가 너무 힘들게 그리고 너무 서둘러 여행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정 하나를 지우고 잠시 쉬는 것이 아쉬웠다. 남들 다 한다는 투어였지만 10년 만에 한국을 떠나 해외여행을 한 우리 가족에게는 그들보다 여유가 필요했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 가족의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라오허제 야시장을 지나치고 호텔로 서둘러 들어왔다. 들어오고 나서 젖은 옷을 벗어내 몸이 가벼워지고 나서야 힘들어서 도망간 허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끔찍한 음식은 우리의 저녁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호텔에 들어온 지 30분도 안 돼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호텔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시먼딩으로 향했고 큰 수확은 없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이지만 거리에는 신난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 알지 못하는 글자로 가득한 간판을 지나치면서 우리는 식사 거리를 찾았다.
‘어딘가에 우육면 맛집 하나쯤은 있겠지.’
목저지 없이 그저 앞으로만 걷던 우리에게는 대부분의 가게는 눈길 한 번이면 충분한 구경거리였다. 차라리 누가 잡아서 끌고 들어오라고 했으면 했다.
우리는 몰라서 또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구글검색으로 걸어서 15분 정도 먼 거리에 있는 24시간 식당을 찾았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우육면 맛집. 많은 유튜버가 다녀간 곳으로 식당의 모습은 화면에서 보던 모습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직원도, 손님도 뭔가 바빴고 빨랐고 또 지저분했다. 테이블 번호도 없는 이 식당에서 내 주문이 혹 잘못된 음식으로 나올까 걱정했지만 식당은 베테랑이었다. 잔돈까지 딱 맞춰서 확인시켜 주는 모습과 바쁘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며 설명까지 해준 직원. 지저분한 주변 환경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정'있는 식당의 모습이었다.
음식의 맛? 기대와는 달랐지만 이전에 먹은 음식과 비교한다면 여기는 '미슐랭'이다.
호텔에 들어와 1일 차의 사진과 영상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중요한 자산,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내가 본 풍경 중 정말 일부와 아이들의 모습. 그래도 아이들은 충분히 담겨 있었다. 빠르게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 오늘 하루는 많이 어설펐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의미 없는 사진에 놀랬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모두 중요했다.
비를 맞은 것부터 음식 실패와 무리한 일정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호텔에서 신이 났다.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씻는 순서 그리고 버블베드 2개에 어떻게 나누어 잘 건 지.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합심해 TV를 켜기도 했다. 여행 출발 비행기를 탔을 때의 설렘이 1일 차 일정이 끝난 호텔에서야 이어졌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번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면서 수없이 들었다 놓은 긴장을 완전히 덜어낸 지금.
호텔에 들어와 옷을 벗어던지는 순간, 그제야 기대한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