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저녁식사

훗날 아종면선에 감탄하게 된 이유

by 김배용

마침내 우리가 가려던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남은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며 늦은 저녁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무심히 스쳐 지나가다 발견한 그곳은, 하나의 전문 음식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다양한 맛을 담아낸 푸드 마켓 같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눈길을 끄는 수많은 간판들과 사진들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마치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여진 곳 같기도 했다. 이곳이 수많은 블로그와 유튜브에 이미 기록된, 모두가 알고 있는 '힙'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만 모르는... 특히 그 인테리어는 사뭇 인상적이었다. 주변의 전통적인 대만 식당들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매우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로 빛나고 있어, 마치 눈부신 활력 그 자체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내부와 외부가 반으로 나뉜 구조였다. 비록 늦은 저녁이라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외부에 앉으니 빗줄기는 막혀 느낄 수 없었고, 건너편의 짙은 검은 산과 고요한 마을의 실루엣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지는, 묘한 운치가 감도는 장소였다. 자리가 넓지는 않아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졌지만, 그 작은 불편함조차도 따뜻한 음식에 대한 기대감과, 부서지는 빗소리 덕분에 견딜 만했다. 비를 피해 밖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마침 네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였고, 우리는 그렇게 외부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건네받은 메뉴판은 모두 한자로 가득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휴대폰을 꺼내 해석을 하며 메뉴를 공부해야 했지만, 다행히 벽면에 붙은 한글 안내를 발견하자마자 주문은 한결 수월해졌다. 우리를 기다리던 음식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찾아보고 들어왔던 것들이다. 곱창국수, 샤오롱바오, 루로우판, 그리고 국물 요리로 완탕까지. 총 네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네 명이라는 인원, 그리고 다 함께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기대와 설렘이 모여, 우리가 아는 모든 종류의 맛을 한 번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마치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접시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한국의 ‘빨리빨리’ 못지않게 대만도 빠르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거의 동시에 음식이 나왔지만,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한 상이 우리가 대만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식사다운 식사’였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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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국에서 급하게 먹었던 퍽퍽한 버거 이후로 처음 제대로 앉아 먹는 한 끼. 우리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나눠 들고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시선을 모았다. 누가 먼저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씩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지?”라고 묻고 싶은, 그런 순간을 기대했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건, 가장 기대했던 곱창국수였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동시에 네 개의 숟가락이 그릇으로 향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곱창과 국수를 함께 떠 한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을 마주했다.


곱창의 ‘곱’이, 말 그대로 ‘똥’처럼 느껴졌다.

순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입을 열 수도,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넘길 수도 없는 애매한 정적. 아내와 딸은 거의 동시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더는 시도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면은 괜찮아… 이건 좀 호불호가 강한 음식인 것 같아.”


신기하게도 곱창을 제외하고 먹으니 국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들도 곱창을 피해 한 번 더 시도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내와 딸에게는 이미 떠난 음식이었다. 그들은 그 그릇과 조용히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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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루로우판. 잘게 썬 돼지고기를 진한 양념에 졸여 밥 위에 올린 음식으로, 동파육을 떠올리게 하는 풍미가 있었다. 여기에 예상치 못하게 미역줄기가 함께 올라가 있었다. 고기는 지방이 많았지만, 족발을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식감이었다. 밥과 함께 먹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미역줄기였다. 나는 평소 미역줄기를 좋아한다. 마트에서 한 박스를 사다 반찬으로 먹을 정도로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눈앞에 놓인 미역줄기는 내가 알던 색이 아니었다. 어딘가 녹색 형광빛이 도는, 낯선 색.


‘다른 나라라서 그런가… 꽤 이국적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한 점을 집어 먹어 보았다.


맛은…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순간 ‘내가 먹던 미역줄기가 더 맛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평소 말이 많지 않은 아들이 입을 열었다.


“밥 색깔이 왜 이래?”


미역줄기가 닿아 있던 부분의 밥이 은은하게 녹색 형광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국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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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음식들은 비교적 평범했다. 샤오롱바오는 어딘가 익숙한 냉동만두의 맛이었고, 완탕은 담백한 국물에 흰 어묵 같은 식감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결국,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기대와 달리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다.

그 순간, 어쩌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특정 가게를 추천하고, 또 피하라고 했는지.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잠시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어둠 속에 잠긴 마을이 보였다. 가로등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사람도 차도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그 풍경은 유난히 고요했다. 낯설지만, 묘하게 정감이 갔다. 식사의 실패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건,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앉아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소한 순간에 감사하며, 우리는 다시 다음 이동을 준비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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