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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솔직한 표정, 뒷모습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양양의 그 한마디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죠.”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양양의 대사 -


#한국인 최초 우승자가 된 바리스타

이다혜 기자의 인터뷰집 <내일은 위한 내 일>에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자가 된 조주연 바리스타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곳은 서울도 아닌 부산의 모모스 커피). 그 시작의 스토리가 재미있다. 남들처럼 커피가 미치게 좋아서도 아니고, 이왕 비슷한 액수의 돈을 번다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카페 알바 일인데 이렇게나 일을 크게 벌인 거다. 무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비장의 무기는 셀카질

인터뷰어인 이다혜 기자는 ‘확신, 전문성, 환대의 태도’를 장점으로 꼽으면서 그녀는 뭘 해도 잘했을 타입이란다. 왜 그럴까 궁금해하던 중에 그녀의 전공이 한몫했을 에피소드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한 그녀. 전공 교수님의 숙제 중 '셀카 찍기'가 있었다고 한다. 사회복지학과 관련자들이 만날 사람은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기분 좋아지도록 거울 보고 웃는 연습을 하라고 한 그 숙제. 4년 내내 하루도 안 빼먹었다고 하니, 근성 하나 끝내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힘들 때도 휘둘리기보다 잘 웃는 편인 것 같다고. 아마 그녀의 장점이라는 '환대의 태도'는 근성과 시간이 길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표정 어쩌지 

나도 거울 보고 웃는 연습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자주 못 보는 내 얼굴 표정은 어떻지. 대부분이 무표정의 시간이라 웃음 근육이 부족한지 입꼬리가 안 올라가고 볼 근육이 흔들리면서 웃는 표정이 영~ 어색하다. 가식적인 웃음도 맘대로 안되고 어정쩡한 이 표정 어쩐담. 




# 부모님의 찐 표정은 뒷모습에 

그런데 표정은 얼굴에만 있지는 않은 듯하다. 아빠가 처음 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실 때. 면회를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 나를 배웅하러 나온 부모님. 아빠는 링거를 꽂고 그 옆에 엄마가 아빠를 부축하며 나오셨다. 아픈데도 억지로 웃음 표정으로 배웅을 하고  돌아서 긴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날 보고 억지로 웃으며 감추려고 애쓰셨지만, 늙어가는 부모님의 찐 표정은 '뒷모습'에서 더 솔직하게 읽을 수 있었다.




# 닮아가는 뒷모습  

또 한 명의 노인 시아버지가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굳이 아파트 입구까지 따라 나오셔서 우리 차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시는데,  큰 키로 약간 구부정하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우리 남편이 보인다. 참 이상도 하지.  얼굴은 아버님과 전혀 안 닮았는데 걸음걸이와 뒷모습이 비슷하다니. 나이 들면 더 비슷해질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님과 남편, 아들 삼대가 닮아가는 뒷모습을 볼 때도 기분이 이상야릇해진다. 얼굴은 세 명이 다 다른데 비슷한 뒷모습.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표정은 '얼굴'에만 있지 않은 것 같다. 




# 하나 그리고 둘 _ 둘 다 보려면 어떡해

내 생각이 더욱 굳어진 건 영화를 보고서다. 몇 년 전 본 대만 영화 <하나 그리고 둘>. 18년 만에 재개봉되었다는, 3시간이 넘는 이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도 없이 대가족의 각 일원의  일상을 그냥 보여준다.  서로 소통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중 어린 8살 난 양양은 어느 날 아빠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양양 : 아빠가 보는 걸 난 못 보고, 내가 보는 건 아빤 못 봐요.
둘 다 보려면 어떡해야 하죠.
아빠 :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하단다.
양양 :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죠.



그렇게 둘 다 보기 위해 아빠한테 선물로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께 걸린 양양. 그런데 양양의 사진들은 얼굴 하나 없이 뒷모습만 잔뜩 있다. 이상한 사진들을 보고  담임선생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이런 사진을 찍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정말 좋을 거예요.



# 내 뒷모습, 내가 흘리고 다니는 표정은 

가끔, 아이가 등교할 때 배웅하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 친구와 헤어지면서도 한참 서서  뒷모습을 혼자서 지켜본다. 내 눈에 그들의 진짜 표정을 오래 담아두고 싶어서.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는, 사람들의 솔직한 표정은 뒷모습에 더 많이 실려있는 것 같아서. 8살 난 양양이 말한 것처럼. 그렇다면 내 뒤태에, 아니 내 뒷모습에는 어떤 감정을 흘리고 다니고 있을까?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진짜 표정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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