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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겹치지 않으면 손절하기

<시와 산책> 한정원 작가의 그 문장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 한정원 <시와 산책>-


#주파수... 가 지지직거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생각할 때 제 발에 걸린다. '다 해봤잖아.' 지난 경험을 믿고 만만하게 볼 때 꼭 탈이 난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 새 프로그램을 런칭하면서 생긴 일이다. 새로운 스텝들을 꾸리고 mc를 정하고 포맷을 만들고 음악과 자막은 어떤 톤으로 할 것인지의 사소한 일까지 세팅하는 신규 프로그램은 한 달 정도가 가장 힘들다. 보통 이 기간만 지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지난 시간에 결정한 일이 다시 회의를 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분명 같이 '일한 적' 있는 PD였고, 나 역시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을 '해 본 적'있는 그 '해봤잖아'의 정신이 '지지직'거리며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는 신호를 무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화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분이었고 다 끝났다고 안심할 때조차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하는 시간이 지나가곤 했다. 까탈스러운 나이 많은 작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수정 공장'을 군말 없이 돌리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작스러운 윗분들의 제작진 호출. 이미 개편 신규 프로그램들의 시사는 한바탕 지나갔는데 왜 바쁘신 윗분들이 일개 프로그램의 피디와 작가만 따로 불러서 시사를 한단 걸까. 이례적인 일이다 싶었는데 곧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처음 기획안을 승인한 윗분이 다른 부서로 이동한 후, 새로 등판한 윗분이 생각하는 프로그램 방향이 많이 달랐던 것.  하지만 맘이 맞지 않는 윗분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제작진을 부른 자리였다. 고래 싸움 앞에 선 새우가 이런 기분일까. 사실, 방송의 디테일을 만드는 건 제작진의 몫인데 수정 사항을 다 듣다 보니 사공이 많아 프로그램이 산으로 갈 판이다. 입으로 쉴 새 없이 항변서를 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왜 그동안 수정사항이 많고 매번 바뀌었는지를 알 듯했다. 콘셉에 대한 상호 간의 소통이나 이해 없이 모두 "예스"라고 말했기 때문이란 걸!   



# 살짝 바람만 불어도 태풍처럼 반응한다면

그동안 해온 프로그램에 비하면 신규 프로그램의 업무강도는 센 편이 아니었다. 단, 제작진이 생각한 콘셉만 정확하게 구현한다면. 문제는 사람이었다! 이미 결정된 사안임에도 누군가의 작은 지적만 있어도 원래 의도와 달리 엎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의욕이 꺾였다. 살짝 바람만 불어도 태풍을 맞은 듯 흔들린다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피디는 프로그램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끌고 갈 힘이 있을까? 그놈에 책임감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되는 방향으로, 안 해도 될 내 몫을 견디고, 후배들을 다독여온 나의 '선의'가 악용당할 수도 있겠다 싶은 판을 보니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은데 어쩌지. 고민하던 찰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권리는 없고 책임만 무거운 나이 많은 작가의 신세를 한탄했더니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이 안 될 거 같다며 '젊은이'에게 물어보란다. 고정관념대로 처리할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진 젊은이들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면서. 



# 현명한 젊은이에게 길을  묻다

누군가를 흉보는 느낌일까 봐 망설이다가 친구의 충고대로 친한 30대 피디에게 야심한 밤,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이 조직을 잘 알고 입이 무거운 젊은 피디. 그가 보기에 이 상황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게 최선인지 물었다. 남일은 쉽게 충고하면서 정작 내 문제는 '접시 물에 코 박고'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니까. 젊고 현명한 피디는 '첫 단추가 잘못된 거는 윗사람끼리 각자의 역할을 하지 않고 떠넘긴 거고, 그다음은 예스맨(?) 피디가 그걸 따르기만 하고 막지 않은 점'이라고 짚으면서 이런 관계를 이어간다면 끝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이나 선의로 덮을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할’의 문제이고 '역할이 비상식적'이라면 앞으로 달라질 게 없는 현실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덧붙였다. 아무리 '엄마'처럼 껴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며 빠져나오는 게 맞단다. 프리랜서 작가의 특권이 그런 것이라며!!! (아멘)



# 마무리할 때의 태도

충고대로 초스피드로  전화를 걸어 하차를 전했다. 처음 답은 건조하게 "알았다"였고 두 번째는 "윗분들이 알면 오해할 텐데 어떡하냐"였다. 오 마이 갓! 몇 달을 손발을 맞춰 일해왔는데 이것이 마무리할 때 할 말인가. 미안한 마음이 쏙 들어가고 손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한 작가의 심정이나 자기감정을 헤아리기보다 윗분들의 심기를 먼저 생각하다니. 어렴풋한 내 예감이 맞았다. 나와는 주파수가 안 맞는 사람이었는데 책임감에 짓눌려 몇 달을 시달리다 손절하니 쇼생크 탈출이 따로 없다. 나는 자유다! 친구 조언대로 현명한 젊은이에게 길을 묻길 잘했다.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 감정의 겹침이 없다면..... 다시 생각해

화끈하게 결단을 내리고도 한동안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나이에 분별력도 없나? 까탈스러운 성격 탓이야! ' 또 하나의 실패담이 쌓여서 나잇값도 못한다고 나를 원망할 뻔했는데 한정원 작가의 이 문장이 나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하물며 자연이나 순간을 스치는 타인과도 일치하거늘, 수많은 의사결정을 함께 내려야 하는 사람과 감정의 겹침 없이 일한다는 건 '나를  훼손'시키며 '희망이 사라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일'은 '일'이어도 '사람'이 빠진 일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다 안다고, 나이 먹었다고, 다 해봤다고 절대 잘난 척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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